엇갈린 부부들

6화. 엇갈린 부부들 - 제 6화

겨울밤관찰자72026. 03. 28. 20:12 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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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욕정에 사로잡혔던 탓일까 ? 뒷일을 생각하지 못하고 있었다 . 잠깐 회사에 다녀온다고 말했지만 , 엘리나를 만나 술을 마셨다 . 수잔나에게는 뭐라고 말을 해야 할까 ? 머리를 굴렸고 , 곧 있을 일을 상상하면서 면서 현관문을 연다 . 따뜻한 실내 공기가 피부에 닿는다 . 그런데 그 온기 속에서 묘한 긴장감이 느껴진다 . 수잔나는 거실 조명도 켜지 않은 채 , 소파에 앉아 TV 를 보고 있었다 . 그녀의 눈빛이 희미한 불빛을 받아 가만히 나를 관통했다 . “ 왔어 ?” 담담한 목소리였지만 , 그 짧은 한마디에서 모든 걸 읽을 수 있었다 . “ 응 . 일이 생각보다 많아서 늦었어 .” 차분하고자 그렇게 노력했건만 내 목소리는 이미 떨리고 있었다 . 수잔나는 한동안 말을 멈춘 채 내 얼굴을 가만히 바라봤다 . 멀리서도 금방 느낌이 온다는 듯 , 그녀의 눈빛이 미세하게 흔들렸다 . 그러다 코끝이 아주 살짝 꿈틀거리고 , 곧바로 눈썹이 좁게 모였다 . 나의 표정 , 몸짓을 보고는 내가 술 마셨다는 것을 알아차린 것이다 . “ 회사 갔다면서 , 술은 왜 마셨어 ?” 그 질문이 너무 직설적이라 순간 숨이 막혔다 . “ 아 , 팀장이랑 잠깐 ......” 변명은 끝까지 이어지지 못했다 . 수잔나는 한숨을 묵직하게 내뱉으며 내게로 다가왔다 . “ 자기야 .” “ 응 ?” “ 나 바보 아니야 .” “ 무슨 ....... 말이야 ?” “ 정말 회사 갔다 온 거 맞아 ?” 그 말에 나는 나도 모르게 눈을 피했다 . ‘ 아 , 씹할 ....... 들킨 건가 ? 아니면 그냥 의심일까 ?’ 현관문을 열기 전에 연습했던 말은 입 밖으로 쉽게 나오지 않았다 . 엘리나와의 일이 떠올랐고 , 동시에 내 심장이 서서히 조여드는 것만 같았다 . 방금 전까지의 열기와 충동은 흔적만 남긴 채 사라지고 , 죄책감과 불안감이 가슴 속을 채웠다 . 나는 뜸을 들이다가 한 박자 늦게 대답했다 . “ 예상보다 일이 늦게 끝났어 .” 말하면서도 나 스스로 믿지 않았다 . 수잔나도 마찬가지였다 . 그녀는 고개를 옆으로 살짝 기울이며 나를 오래 바라봤다 . 내가 거짓말을 할 때마다 나타나는 작은 습관들을 , 그녀는 이미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다 . “ 여보 .” 나를 부르는 목소리가 너무 차분해서 오히려 더 무서웠다 . “ 우리 , 요즘 이상한 거 알아 ?” 나는 대답할 수 없었다 . 인정하는 순간 모든 게 무너질 것 같았다 . “ 뭔 지는 모르겠는데 , 당신 평소 같지가 않아 . 회사 일 때문이랍시고 자꾸 나가서 늦게 오는데 , 느낌이 달라 .” 그 말에 나는 애써 태연한 척 웃어 보이려 했지만 , 입꼬리가 제대로 올라가지 않았다 . 나는 겨우 목소리를 가다듬고 대답했다 . “ 의심하게 해서 미안해 . 회사 일이 많이 바쁘다 보니 내가 당신한테 소홀했나보다 .” 수잔나는 한숨을 길게 내쉬더니 , 한쪽 손으로 이마를 매만졌다 . “ 그래 , 바쁜 건 알겠어 . 나도 일하는 입장이라 이해해 . 근데 ...... 계속 이런 느낌이 들면 불안해져 . 내가 괜히 오버하는 걸 수도 있지만 .” 그 뒤로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 아마 , 내가 했던 말들조차 진심이 아닌 것처럼 들렸음이라 . 바보가 아닌 이상 , 순간을 모면하려고 꾸며낸 말이라는 것을 모를 리 없으니까 . 수잔나는 한숨을 내쉬며 방으로 들어갔지만 나는 한 동안 그 자리에 서 있었다 . 두려움 , 후회 , 그리고 미처 정리되지 않은 엘리나와의 기억들 . ‘ 어떻게 해야 하지 ?’ * * * 그 후 며칠 동안 , 나는 마음 한구석에 계속해서 불안을 품고 지냈다 . 집에 있을 때면 수잔나의 눈짓 하나에도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고 , 엘리나에게서 메시지가 올까 봐 핸드폰 알림을 꺼두고는 시도 때도 없이 확인했다 . ‘ 대체 내가 왜 이러고 있는 걸까 ?’ 하는 생각이 들면서도 , 그녀와 함께 나누었던 몸의 대화 , 웃음 , 그리고 서로가 처한 외로운 현실을 누구보다 잘 공감해주던 시간들이 끊임없이 마음을 잡아 끌었다 . 그냥 , 간단히 말하면 ....... 엘리나가 보고 싶고 , 그리웠다 . 하지만 , 수잔나가 낌새를 알아차린 이상 , 나는 결정해야 했다 . 오래 고민할 것도 없이 하나의 결론을 냈다 . ‘ 끝내자 ’ 가 아니라 , 앞으로 들키지 않도록 더 ‘ 철저해지자 ’ 는 것 . 며칠 동안 엘리나와 주고받은 카톡을 모두 지우고 , 혹시 남아 있을지도 모를 흔적들을 샅샅이 없애며 스스로를 다잡았다 . 그리고 며칠이 흘러 , 다시 토요일이 찾아왔다 . 평소라면 “ 난 이번에도 안 갈래 ” 라며 손사래를 쳤을 수잔나가 , 그날은 내 물음이 끝나기도 전에 고개를 끄덕였다 . “ 응 , 이번엔 갈게 .” 내가 며칠 전 보였던 어설픈 행동들 ㅡ 늦은 귀가 , 불필요한 변명들 — 그 모든 조각들이 그녀 머릿속에서 하나의 방향을 가리키고 있었다 . 수잔나는 아마 이렇게 생각했을 거다 . 경률이 뭔가 숨기고 있다면 , 그 시작은 그 모임일지도 모른다 . 그래서였을까 . 그녀의 대답 속에는 단순한 동의가 아니라 , 조용히 무언가를 지켜보겠다는 의지가 담겨 있었다 . 확인하려는 마음 . 그리고 혹시 모를 불안을 스스로 정리하려는 마음 . 나는 억지로 웃었다 . “ 그래 , 같이 가자 .” 여섯 시 반 . 이제는 익숙한 그 곳의 문을 열고 들어가니 , 사람들이 손을 흔들며 나를 반겨준다 . 수잔나도 수줍게 인사를 건네고 , 자리에 앉는다 . 그리고 내 눈에 들어온 한 사람 . 엘리나 . 늘 보던 것처럼 아름다웠고 , 예뻤다 . 그녀는 평소처럼 웃으면서 내게 인사를 건넸고 나도 반갑게 받았을 테지만 그 순간만큼은 그럴 수 없었다 . “ 수잔나 , 오랜만이야 .” “ 응 , 그러게 , 헤헤 .” 수잔나와 엘리나는 가볍게 포옹을 하며 서로 인사를 주고받았다 . 엘리나는 옆에 앉은 남자를 바라보며 말했다 . “ 이쪽은 내 남편 , 주혁이야 .” 엘리나의 말에 우리 둘의 시선이 그녀 옆의 남자로 향했다 . 그는 약간 긴장한 듯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숙였다 . “ 안녕하세요 . 심주혁입니다 .” 수잔나는 반갑다는 듯 두 손을 모아 그의 인사를 받아줬다 . “ 반가워요 ! 드디어 만나네요 . 엘리나한테 이야기 들었어요 .” 나는 그와 악수하며 짧게 인사를 건넸다 . 손을 맞잡는 순간 , 이상한 느낌이 전해졌다 . 나랑 불륜 관계에 있는 사람의 남편이라 . 주혁은 아무것도 모른 채 순진한 미소를 지었고 , 그 무구함이 오히려 숨을 턱 막히게 만들었다 . 시선을 피하려는 순간 , 엘리나가 아주 잠깐 나를 바라봤다 . 그 1 초도 되지 않는 눈빛 교환이 머리를 얼어붙게 했다 . 그녀의 표정엔 별 다른 의미가 없어 보였지만 그게 더 무서웠다 . 들켜선 안 되는 관계가 바로 눈앞에서 교차하는 순간 . 이 모임의 공기가 서서히 변하고 있다는 걸 본능적으로 느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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