엇갈린 부부들

34화. 엇갈린 부부들 - 제 36화

겨울밤관찰자72026. 03. 30. 00:12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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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실히 확인해야겠다고 마음먹은 건 , 그날 밤이었다 . 더 이상 감으로 , 눈치로 버틸 수 있는 단계가 아니었다 . 내가 느끼는 이 느낌이 더 이상 기분 탓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 회사에 양해를 구하고는 개인적인 사정으로 당분간 정시 퇴근을 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 팀장은 별다른 질문은 하지 않고 그렇게 하라고 말했다 . 그렇게 나는 며칠 동안 , 오후 다섯 시가 되면 자리를 정리해 회사 문을 나섰다 . 수잔나가 일하는 어학원 근처 카페는 퇴근 시간쯤에도 생각보다 조용했다 . 창가 자리에 앉아 커피 한 잔을 앞에 두고 , 시간을 흘려보냈다 . 6 시가 조금 넘은 시각 . 어학원의 출입문이 열릴 때마다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 사람들이 무리지어 어학원을 나오고 , 수잔나는 그 사이에 섞여 함께 걸어 나온다 . 그러나 첫째 날도 , 둘째 날도 아무 일 없었다 . ‘....... 내가 너무 예민한가 ?’ 그런 생각이 들 즈음 , 사흘째 되는 날이었다 . 오후 6 시 15 분 . 어학원 문이 열리고 수잔나가 나왔다 . 평소와 다름없는 얼굴 , 다름없는 걸음걸이 . 그런데 길가에 서 있는 차 한 대가 눈에 들어왔다 . 익숙한 차였다 . 주혁이 타고 다니는 것 . 수잔나는 망설임없이 그쪽으로 걸어갔고 , 조수석 문을 열더니 자연스럽게 올라탔다 . 차는 곧바로 출발했다 . 그 순간 ,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 나는 조용히 차를 몰아 뒤를 밟았다 . 두 사람은 30 여분 정도 운전해서 한 닭갈비집에 들어갔다 . 주차장에 들어가 , 차를 최대한 출입구 가까이에 대고서는 식당 안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 두 사람은 웃으면서 고기를 먹고 , 수잔나는 혼자서 술을 한 잔 하고 , 서로의 입에 고기를 넣어주고 난리도 아니었다 . 식사를 마친 뒤 , 그들은 차를 두고서는 어디론가 걸어간다 . 조용히 뒤를 밟으니 모텔 간판이 보였다 . 그 앞에서 잠시 멈췄다가 둘은 아무렇지 않게 안으로 들어갔다 . 그 광경을 보면서도 화는 나지 않았다 . 그냥 ...... 허탈했다 . 그동안 내가 했던 노력들 — 말을 아끼고 , 배려하려 애쓰고 , 더 잘해보겠다고 다짐했던 순간들 — 이 모든 것들이 한순간에 무의미해진 느낌 . 그래서였을까 ? 분노 대신 담담함이 먼저 찾아왔다 . 나 역시 떳떳하지 못했으니까 . 그제야 분명해졌다 . 우리 넷 중에 , 선을 지키고 있던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는 걸 . 그리고 , 이 결혼 생활도 이미 끝났다는 사실도 . 다만 ....... 그것을 언제 어떻게 말하느냐의 문제만 남았을 뿐이었다 . 집에 돌아와 소주를 세 병이나 비웠다 . 취기가 오르자 , 참아왔던 이름 하나가 입술을 비집고 나왔다 . [ 엘리나 ] 전화를 걸었다 . 신호가 두 번 정도 가다가 그녀가 전화를 받았다 . 내 이름을 부르는 그녀에 대한 첫 마디는 ‘ 보고 싶어 ’ 였다 . 잠시 침묵이 흐른 뒤 , 그녀도 같은 말을 했다 . 그 짧은 한마디에 , 가슴을 짓누르던 중압감이 조금 가라앉았다 . 그제야 인정했다 . 말로는 부정해왔지만 , 나는 이미 엘리나에게 마음을 전부 주고 있었다는 걸 . 다음 날 , 퇴근 후 돌아온 집은 여전히 냉랭했다 . 수잔나와는 필요 이상의 말을 하지 않았고 , 각자의 공간에 머무르며 시간을 보냈다 . 음악을 들으면서 거실에서 운동을 하고 있는데 , 전화벨이 울리면서 엘리나의 이름이 떴다 . “ 여보세요 ?” “ 경률아 , 으흐흑 , 흑흑 .......” 울음이 섞인 목소리에 너무나도 놀란 나머지 , 나는 들고 있던 덤벨을 내려놓았다 . “ 왜 그래 ?” “ 나 ....... 쫓겨났어 .” 맙소사 , 엘리나는 주혁과 또 한 번 크게 다퉜고 , 결국 집에서 쫓겨났다고 했다 . 주혁이 새끼가 엘리나의 옷가지들과 짐을 캐리어에 모두 넣고는 문밖으로 던졌다고 . 그 새끼에게 쌓였던 감정이 이윽고 폭발했고 , 전화기를 쥔 내 손이 부르르 떨렸다 . 그 때 , TV 를 보던 수잔나가 내게 다가왔다 . “ 무슨 일이야 ?” 그녀의 질문에 나는 숨을 고르고 사실대로 말했다 . 잠시 침묵이 흐른 뒤 , 수잔나는 말했다 . “ 당장 가자 . 엘리나 혼자 둘 수 없잖아 .” 그러면서 겉옷을 집어 들었다 . 그 모습을 보며 나는 헛웃음을 지었다 . 와 ....... 어쩜 저렇게 가식적일 수가 있을까 . 하지만 그 감정보다 엘리나에 대한 걱정이 더 컸다 . 나는 말없이 차 키를 집어 들었고 , 수잔나를 태운 채 그들의 집으로 향했다 . 차를 세우자마자 처음 보이는 것은 엘리나의 실루엣이었다 . 빌라 입구 앞 , 희미한 가로등 아래에서 그녀는 캐리어 가방을 옆에 둔 채 쭈그려 앉아 있었다 . 어깨를 잔뜩 웅크린 모습이 , 마치 버려진 사람 같았다 . 그 장면을 보는 순간 , 머릿속에서 마지막으로 남아 있던 이성이 끊어졌다 . 차 문이 열리기도 전에 엘리나가 우리를 발견했다 . 그녀는 그대로 일어나 이쪽으로 달려왔다 . 나는 옆에 수잔나가 있다는 것도 잊은 채 엘리나를 끌어안았다 . 그녀의 몸이 덜덜 떨리고 있었다 . “ 괜찮아 ....... 괜찮아 .” 등을 두드리며 그렇게 말했지만 , 그 말은 나 자신에게 하는 말이기도 했다 . 엘리나는 울음을 삼키며 고개를 끄덕였다 . 나는 그녀를 뒤로 보내고 , 빌라 쪽으로 걸어갔다 . 계단을 오르는 발걸음이 무거웠다 . 현관 앞에 서서 문을 두드렸다 . 처음엔 손바닥으로 , 그다음엔 주먹으로 . 쾅 , 쾅 . 아무 반응이 없었다 . 속에서 끓어오르는 걸 더는 누를 수 없었다 . “ 심주혁 , 문 열어 이 새끼야 !” 목소리가 계단을 울렸다 . 그 순간의 나는 이미 제정신이 아니었다 . 엘리나의 울음 , 수잔나의 침묵 , 그리고 그동안 쌓여온 모든 감정이 한꺼번에 터져 나오고 있었다 . 한참이 지나서야 , 안쪽에서 발소리가 들렸다 . 철컥 — 문이 열리고 주혁의 얼굴이 드러났다 . 그 얼굴을 보는 순간 ,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다 . “ 씹새끼가 .” 그 한마디와 함께 주먹이 먼저 나갔다 . 주혁은 ‘ 억 -’ 하고 비명을 지르며 현관 바닥으로 쓰러졌다 . 분이 풀리지 않았던 나는 멱살을 다시 움켜쥐고 반쯤 끌어올려 주먹을 몇 번이고 더 꽂았다 . 얼굴이 옆으로 돌아가고 , 그의 입술 위로는 붉은 피가 스멀스멀 올라왔다 . 그러는 찰나에 내 머릿속에서는 쾌감이 분노를 잠식해나갔다 . 그때 누군가 내 팔을 잡아당겼다 . “ 그만해 !” 수잔나였다 . 그녀의 손은 생각보다 힘이 셌다 . 아니 , 어쩌면 내가 잠깐 멈췄는지도 모른다 . 숨이 거칠어졌다 . 내 시야가 흔들리는 사이 , 수잔나는 나를 밀쳐내듯 떼어놓고는 주혁에게로 갔다 . “ 괜찮아 ? 정신 차려 봐 .” 그녀는 바닥에 주저앉아 주혁의 얼굴을 감싸 쥐었다 . 방금 전까지 내 주먹이 오갔던 얼굴이었다 . 손바닥으로 그의 뺨을 쓰다듬고 , 이마에 떨어진 머리카락을 넘겨줬다 . 그 장면이 슬로모션처럼 보였다 . 그 순간 , 무언가 안에서 뚝 하고 끊어지며 , 내 주먹에는 힘이 쫙 풀렸다 . 아 , 그렇구나 ........ 나라는 사람은 안중에도 없었구나 . 엘리나는 계속 내 옆에 서 있었다 . 언제부터였는지 모르겠다 . 캐리어는 여전히 문 앞에 놓여 있었고 , 그녀는 울지 않았다 . 울 힘조차 없는 표정이었다 . 나는 그녀를 한 번 봤다가 , 다시 수잔나와 주혁을 봤다 . 그리고 확신했다 . 이 순간은 ....... 우리 부부들의 관계가 정말 끝났음을 알리는 선고라는 것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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