엇갈린 부부들

16화. 엇갈린 부부들 - 제 17화

겨울밤관찰자72026. 03. 29. 06:12 31
18px
꺄르르 웃는 소리와 함께 , 두 사람의 말소리가 문 너머 들린다 . “ 어머 , 이거 왜 이래 ?” “ 너 때문에 .” “ 아잇 , 하지 마 .” “ 뭐 , 어때 . 우리 둘 뿐인데 .” 아 ....... 이게 진짜였구나 . 확신에 차면서도 한편으로는 그저 내 의심이 과하고 , 질투 때문에 괜한 생각을 한 건 아닐까 했는데 , 완전히 틀렸네 ? 지금 문 하나를 사이에 두고 들리는 소리가 모든 답을 주고 있었다 . 배신감이 먼저 밀려왔다 . 그 뒤를 이어 분노가 들끓었고 , 밑바닥에는 설명하기 어려운 허탈함이 고여 들었다 . 하지만 동시에 , 엘리나와 있었던 일도 스쳐갔다 . 떳떳하지 못한 짓을 먼저 시작한 건 나였으니까 . 그건 팩트였다 . 그 생각 때문에 주먹을 쥔 손이 조금 느슨해지기도 했다 . 그렇다 해도 ....... 아무리 그렇다 해도 , 지금 이 상황을 아무렇지 않게 넘길 수는 없었다 . ‘ 그냥 돌아갈까 ?’ 문 너머 들리는 두 사람의 소리를 들으며 몇 번이고 손잡이를 잡았다 떼기를 반복했다 . 여기서 문을 열어버리면 , 우리 넷의 관계가 되돌릴 수 없을 수도 있다 . 어쩌면 수잔나는 단순히 분위기에 취해서 잠깐 이성을 잃은 것일 수도 있잖아 . 이 문을 열지 않는다면 아직은 돌이킬 수 있다 . 그렇게 스스로를 속여 보던 순간 , 안쪽에서 들린 짧은 신음 소리 , 흔들리는 목소리 . 그걸 듣는 순간 머릿속이 완전히 새하얘졌다 . 그 때 , 이성이고 고민이고 다 날아갔다 . 나는 문손잡이를 움켜쥐고 그걸 그대로 벌컥 밀어 올렸다 . “?” “ 어 ? 엇 ...... 자 , 자기야 .” 수잔나는 팬티만 걸친 채 , 반라가 되어 있었고 , 주혁이 그 위에 엎어진 채 그녀의 젖가슴에 손을 올리고 있었다 . 두 사람은 하던 동작 그대로 얼어붙었다 . “ 자는데 하도 이상한 소리가 들려서 올라와 봤더니 ....... 너네 뭐하냐 ?” “ 혀 , 형님 . 그게 .......” “ 하 ....... 나 진짜 , 씹할 .” 내 입에서 욕이 튀어나왔다 . 수잔나는 놀란 눈으로 나를 바라보며 몸을 움츠렸다 . 위에는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채 , 당황해서 옷을 주워 입을 생각도 못한 채 , 팔로 자신을 젖무덤 두 개를 가렸다 . 주혁은 더는 말을 잇지 못하고 내 앞으로 달려와서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 수잔나는 눈물을 터뜨리며 ‘ 미안해 , 미안해 .’ 라는 말만 반복했다 . 나는 주먹을 움켜쥐었다 폈다 하며 , 지금 이 자리에서 주혁의 죽통을 한 대 후려칠까 말까 갈등했다 . 하지만 손이 쉽게 올라가지 않았다 . 때린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라는 걸 알기 때문일까 , 아니면 내가 떳떳하지 못한 이유였을까 ? “ 너는 ....... 새끼야 ....... 네 마누라가 딴 놈이랑 놀아나면 반 죽여 놓겠다던 새끼가 . 진짜 ....... 어휴 , 씹할 새끼 .” “ 죄송해요 , 형님 .” 주혁은 무릎을 꿇고 , 땅에 머리를 박으면서 사죄했다 . 어이구 , 같잖아서 진짜 ...... 수잔나는 눈물을 그렁그렁하며 내게 다가와 두 손으로 빌기 시작했다 . “ 여보 , 진짜 잘못했어 . 다시는 안 그럴게 .” 웃기지도 않는다 . 그 순간 내 안에서 올라오는 감정은 하나로 정의하기 어려웠다 . 분노 , 모멸감 , 질투 , 허탈함 . 그리고 그 밑바닥에 깔려 있는 건 결국 내가 먼저 선을 넘었다는 자각이었다 . 때문에 두 사람을 향해 마음껏 화를 내고 싶으면서도 , 동시에 그럴 자격이 있는지 스스로에게 묻게 되었다 . 서로가 서로에게 상처를 낸 관계 , 어쩌면 이렇게 될 수밖에 없었던 필연이었을지도 . 그런데도 , 저 두 사람의 비굴한 모습 앞에서는 이상하게 우위감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 마치 , 모든 키는 내가 쥔 것 같은 주도감이라고나 해야 할까 ? 그 때였다 . “ 뭐야 ?” 뒤를 돌아보니 엘리나가 멍한 표정으로 우리 셋을 바라보고 있었다 . 이제 막 , 잠에서 깬 얼굴이었지만 , 상황을 이해하는 데엔 1 초도 걸리지 않았을 터 . 그녀의 시선이 반나체로 울먹이는 수잔나를 스치고 , 무릎 꿇은 채 벌벌 떠는 주혁에게 멈췄다 . “ 다 , 당신 설마 ?” “ 여보 ........” 엘리나는 그대로 뒤돌아서 아래층으로 내려가 버렸다 . 나는 한숨을 깊게 내쉬고 두 사람을 바라봤다 . 수잔나는 얼굴이 새하얘져 있었고 , 주혁은 여전히 무릎 꿇은 채 고개를 들지 못하고 있었다 . “ 씹할 , 좆 됐네 ?” 그 한마디를 던지고 나는 계단을 내려갔다 . 엘리나가 허둥지둥 점퍼를 챙겨 입는 모습이 보였고 , 얼마 지나지 않아 현관문이 벌컥 열리며 바깥의 찬 공기가 안으로 쓸려 들어왔다 . 밖으로 나가니 , 엘리나는 펜션 마당 한복판에서 팔짱을 낀 채 서 있었다 . 가로등 불빛 아래 입술이 떨리고 있었고 , 찬바람에 머리카락이 흩날렸다 . 그녀는 어금니를 꽉 깨물고 있었지만 , 눈가는 젖어 있었다 . “ 엘리나 .” 내가 조심스레 부르자 그녀는 돌아보지도 않고 말했다 . “ 나도 할 말 없어 . 우리 둘 다 할 말 없지 .” “ 그래 . 그렇지 ....... 쟤들을 뭐라 할 입장은 아니야 .” 내가 다가가자 그녀는 한 발 뒤로 물러섰다가 결국 멈췄다 . “ 그래도 , 이렇게까지 될 줄은 몰랐는데 .” 엘리나는 결국 얼굴을 감싸며 울음을 삼켰고 , 그 모습을 보니 가슴이 먹먹해졌다 . 나는 천천히 손을 뻗어 그녀를 끌어안았다 . 처음엔 굳어 있던 몸이 잠시 뒤 힘없이 기대왔다 . 찬바람에 내 가슴팍에는 냉기가 감돌았지만 그녀는 거부하지 않고 안겼다 . “ 추워 . 일단 , 안으로 들어가자 .” “ 응 .” 나는 그녀의 등을 가볍게 쓰다듬으며 천천히 현관 쪽으로 걸었다 . 집안의 따뜻한 온기가 피부를 감쌌고 , 소파에 앉아서는 위층에다 소리쳤다 . “ 둘 다 내려 와 .” 잠시 후 , 주혁과 수잔나가 고개를 푹 숙인 채 계단을 걸어 내려왔다 . 나는 실내 흡연 금지라는 공지도 무시한 채 , 연거푸 전자 담배를 빨았다 . 위로 올라가던 연기가 천장에 부딪혀 옆으로 퍼지며 자욱해진다 . “ 앉아 .” “......” “ 대가리 처 들고 .” 나의 호통이 주혁은 움찔하며 , 억지로 어깨를 펴고 고개를 들었다 . 무거운 공기가 우리 네 사람 사이로 파고들었고 , 시계 초침 돌아가는 소리만 적막을 깨고 들려올 뿐이었다 . 한숨이 절로 나오는데 , 도저히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담배만 뻐끔뻐끔 피우고 있다 . 주혁은 여전히 고개를 숙이고 있고 , 수잔나와 엘리나는 내 눈치를 보기 바쁘다 . 우리 넷은 한참을 그렇게 앉아 있었다 . 어느덧 새벽 1 시 반이 넘어가고 있었다 . 고개를 푹 숙이고 있던 주혁이 먼저 입을 열었다 . “ 죄송합니다 , 형님 .” “ 미친 놈 , 지랄하네 .” “.......” 무슨 말이라도 해야 할 것 같은데 , 욕 말고는 도저히 떠오르지 않았다 . 더 이상 이렇게 있다가는 진짜 내가 경찰에 붙잡혀 가는 한이 있더라도 주혁을 조질 것만 같았다 . 그는 내 얼굴을 보고서는 조심스럽게 ‘ 형님 ’ 이라 하며 운을 뗐다 . “ 진짜 , 뭐라고 말씀을 드려야 할 지 ......” “ 아가리 닫아라 .” “......” 안 그래도 마음이 착잡한데 , 주혁이 새끼 목소리까지 들으니 진짜 주먹이 나갈 것 같았다 . 다시 정적이 내려앉았다 . 나도 숨을 고르며 머릿속을 차분히 정리하기 시작했다 . 이미 벌어진 일은 되돌릴 수 없다 . 그러니 이제부터 어떻게 할지 , 어떤 방향으로 이 상황을 끌고 갈지를 생각해야 했다 . 분노가 아직 가슴 한켠에서 들끓고 있었지만 , 막상 정리하려고 마음을 가라앉히자 아까 잠깐 스쳤던 우월감이 다시 떠올랐다 . 그 감정이 심호흡처럼 내 안으로 스며들면서 , 터질 듯했던 분노는 조금씩 가라앉기 시작했다 . 여전히 상황은 엉망이고 기분도 최악이었지만 ...... 이 순간부터 주도권은 내게 있다는 사실을 다시금 상기했다 . “ 늦었다 . 자자 .” “ 네 ?” “ 일단 자고 , 나중에 이야기 하자 .” “......” “ 가서 자 .” 주혁은 우물쭈물하며 엘리나를 힐끔 바라봤다 . 병신 하남자 같은 새끼 . 이 와중에 지 마누라 눈치보고 있네 . “ 가라고 .” “ 네 .” 주혁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 나는 그들이 보든 말든 , 엘리나의 손을 잡고 말했다 . “ 오늘은 아무 생각 말고 그냥 자 . 나중에 기분 좀 가라앉았을 때 , 차분하게 이야기하자 .” “ 알았어 .” 두 사람은 자신들의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 마지막으로 남은 수잔나 . 나는 일어나서 그녀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 “ 안 잘 거야 ?” “ 응 ?” “ 들어 와 . 10 시에 체크아웃 해야 돼 .” 수잔나는 고개를 푹 숙인 채 따라 들어왔다 . 잠자리에 누웠지만 , 도저히 잠이 오지 않았다 . 가슴 속은 여전히 들끓고 있었지만 , 앞으로 우리 넷의 관계를 어떻게 이끌어 가야 할 지 생각하자 아까보다도 더 차분해졌다 . 잠은 점점 멀어져 갔지만 시야는 오히려 또렷해졌다 .
회차 목록(39)

댓글 0

댓글을 작성하려면 로그인이 필요합니다.

첫 댓글을 남겨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