엇갈린 부부들

10화. 엇갈린 부부들 - 제 10화

겨울밤관찰자72026. 03. 29. 00:12 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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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나는 거실로 나와서 머리를 말리고 , 나는 그런 그녀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다 . 아이보리색 홈웨어 원피스를 입은 그녀 . 풍만한 골반과 출렁이는 젖가슴 . 드라이기 바람에 흩날리는 머리카락을 보고 있자니 , 숨을 고르던 똘똘이가 다시 기지개를 켠다 . “......” 나는 뒤로 가서 엘리나를 조용히 안았다 . 가슴에 손을 얹으니 브래지어를 하지 않은 맨 살의 감촉이 그대로 전해졌고 , 엉덩이골에 밀착한 사타구니에는 다시 온기가 돌며 좆 뿌리에 힘이 들어갔다 . “ 치킨 식겠다 . 저녁부터 먹을까 ?” 엘리나는 돌아서서 내 손을 부드럽게 뿌리쳤다 . 아쉬움을 잠깐 삼킨 채 , 우리는 테이블로 와서 치킨을 뜯었고 , 맥주 한 잔씩 채워서 건배를 했다 . 가을 밤 , 그녀의 집에서 히터를 틀어 놓고 아늑하게 함께 저녁을 먹고 있으니 , 행복하면서도 아쉽다 . 이런 집 데이트조차 행복한데 , 엘리나가 내 아내였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 치킨이 몇 조각 안 남았을 때 , 테이블 위에 올려뒀던 휴대폰이 울렸다 . [ 수잔나 ♥ ] 나는 볼륨 버튼을 눌러 소리를 죽이고는 전화기를 뒤집었다 . “ 안 받아 ?” “ 아 , 별 거 아냐 . 하하 .” 벨소리는 지독할 만큼 오래도록 울렸다 . 그리고 곧 카톡 메시지 한 통이 왔다 . [ 수잔나 - 어디야 ? 아직도 일해 ?] 나는 테이블 아래로 휴대폰을 내려 답장했다 . [ 나 - 다 끝났어 . 곧 들어갈게 ] [ 수잔나 - 아까 당신 회사 갔다가 문 닫혀 있던데 ....... 회사 맞아 ?] 얘가 회사를 갔다고 ? 아 , 씹할 ....... 나도 모르게 내 입에서 욕이 절로 튀어 나왔다 . 등골이 서늘해지며 가슴이 쿵하고 내려앉았다 . 내가 욕하는 걸 들었는 지 , 엘리나가 걱정스런 표정을 하고 물었다 . “ 괜찮아 ?” “ 미안한데 , 나 가봐야 할 것 같아 .” “ 지금 ?” “ 응 .” 치킨 몇 조각이 그대로 남아 있었고 , 따뜻했던 분위기는 순식간에 깨져 버렸다 . 나는 허둥지둥 옷을 주워 입고 일어났고 , 엘리나는 현관문 앞까지 나를 따라 나왔다 . “ 수잔나지 ?” “ 응 ......” 그녀는 걱정 섞인 한숨을 내뱉었다 . “ 나중에 연락 될 때 연락 줘 . 아무 일 없었으면 해 .” 나는 고개만 끄덕였고 , 인사도 제대로 하지 못한 채 차에 올랐다 . 술을 마셨지만 대리 기사를 부를 생각조차 나지 않았고 , 그대로 운전대를 잡고 집으로 향했다 . --------- 두근거리는 가슴을 부여잡고 , 현관문을 연다 . 아니나 다를까 , 집 안 공기가 너무나도 냉랭하다 . 수잔나는 팔짱을 끼고 소파에 앉아 있다가 나를 보자 걸어왔다 . “ 여 , 여보 .” 그녀의 눈썹은 일그러져 있었고 , 첫 마디부터 이미 톤이 올라가 있다 . “ 당신 뭐야 ?” “ 뭐가 ?” “ 솔직히 말해 . 오늘 어디 갔었어 ?” “ 일하러 갔다고 했잖아 .” 수잔나는 잠시 고개를 돌려 ‘ 피식 ’ 하고 코웃음을 쳤다 . “ 나 오후에 어학원 사람들하고 영화 보러 갔어 . 집으로 오는 길에 당신이랑 같이 갈 수 있을까 해서 회사 들렀는데 , 문 닫혀 있던데 ?” 수잔나의 말이 끝나자마자 , 내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 하지만 당황하는 기색을 보여선 안 됐다 . 나는 최대한 자연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 “ 아침엔 회사에 있었는데 , 오후에 클라이언트 미팅이 잡혀서 나갔어 .” “ 번역하는 사람이 왜 고객을 직접 만나 ?” “ 가끔은 그래 . 일 얘기하다 보면 직접 만나야 할 때가 있어 .” 입에서는 술술 변명이 나왔지만 , 머릿속은 이미 불이 난 듯 복잡했다 . “ 그럼 , 그 사람한테 연락해 봐 .” 머릿속이 하얘졌다 . 나는 짜증이 올라오는 걸 억누르지 않고 그대로 터뜨렸다 . “ 아니 , 당신은 생각이라는 걸 하고 말하는 거야 ? 그 사람 영어 한 마디도 못 해 . 전화해서 뭐라고 해 ? 한국말로 대화하면 , 네가 알아듣고 판단할 수 있어 ?” “.......” “ 그리고 이런 사적인 의심 하나 푼다고 고객 귀찮게 하면 , 그게 얼마나 무례한지 알아 ? 몰라서 하는 말이야 ?” 내 목소리가 점점 커졌고 , 나도 내가 얼마나 공격적으로 나가는 지 알았다 . 하지만 , 지금 멈췄다가는 오히려 들킬 것만 같았기에 그럴 수 없었다 . 수잔나는 움찔하며 입술을 깨물었다 . 나는 말을 이어갔다 . “ 전화 잘못했다가 고객이 기분 상해서 일감 끊기면 , 당신이 책임질래 ?” 나도 모르게 점점 수잔나를 몰아붙였지만 그래야만 한다 . 그게 오히려 안전하니까 . 수잔나는 입을 다물고 고개를 숙였다 . 마치 잘못한 사람처럼 . 하지만 실제로 잘못한 쪽은 나였다 . 죄책감에 내 목소리는 차츰 낮아졌다 . “ 됐어 . 나 씻고 올게 .” 수잔나는 바닥만 바라본 채 멍하니 서 있었다 . 나는 그런 그녀를 그대로 두고 욕실로 향했다 . 옷을 벗은 뒤 유튜브로 음악을 크게 틀고 샤워기를 켰다 . 뜨거운 물줄기가 머리를 적시는 동안 , 가슴 속을 들여다보니 온갖 생각들이 뒤엉켜 있었다 . 수잔나는 왜 갑자기 내 회사까지 찾아왔을까 ? 그것도 하필 오늘 ? 큰 고비를 넘겼다는 안도감과 동시에 , 엘리나와 조금 더 오래 함께 있지 못했다는 아쉬움이 묘하게 뒤섞여 기어 올라왔다 . 그렇게 생각들을 하나씩 정리하고 씻고 나온다 . 수잔나는 여전히 소파에 앉아 있다 . 눈가가 젖어 있고 , 볼에서는 두 줄기 눈물이 주르륵하고 흘러내린다. 내 가슴이 무너졌고 , 그녀의 곁에 앉아서 손을 잡았다 . “ 자기야 .......” “ 저리 가 .” 수잔나는 내 손을 휙 뿌리치고 돌아앉았다 . 나는 다시 다가가서 그녀를 끌어안고 내 품으로 끌고 왔다 . “ 흑 .” 이내 내 어깨가 젖어 왔다 . 나는 그녀의 등을 부드럽게 토닥이며 내 품 안으로 끌고 왔다 . 불현듯 , 어젯밤의 기억이 떠올랐다 . 주말에 영화 보러 가자고 다가왔던 수잔나를 나는 차갑게 밀어냈다 . 회사 일 핑계로 둘러대며 눈도 제대로 마주치지 않았다 . 그때의 무심함이 지금 그녀의 눈물이 되어 나를 질책하는 것이라 . 불륜이라는 삶은 생각보다 훨씬 더 험난했다 . 들키지 않기 위해 치밀하게 움직여야 하고 , 한마디 말도 조심해야 한다 . 그 과정에서 정작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가장 큰 상처를 주고 있었다 . 그런데도 엘리나를 놓고 싶지는 않았다 . 그녀와 함께하는 순간들은 너무 달콤했고 , 벗어나야 한다는 생각보다는 더 깊은 욕망이 먼저 나를 휘감았다 . 하지만 수잔나의 의심은 분명히 커져가고 있었다 . 오늘 있었던 일도 그렇고 , 앞으로 더 집요하게 파고들지도 모른다 . 그 느낌이 손을 뻗어 서서히 내 목을 조여 오기 시작했다 . 그럼에도 들켜서는 안 됐다 . 그러면 모든 게 끝이니 . 수잔나는 한 동안 내 품에서 떠나지 않았다 . 머릿속에서는 오만 가지 생각이 들러붙었지만 할 수 있는 게 아무 것도 없었다 . 그저 태연한 척 , 내가 정말 잘못했기에 사죄하듯이 그녀를 안고 있을 수밖에 . 그렇게 그날 밤은 조용히 넘어가는 듯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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