엇갈린 부부들

32화. 엇갈린 부부들 - 제 34화

겨울밤관찰자72026. 03. 29. 22:12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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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가 밝은 지 엊그제 같은데 , 벌써 며칠이 훌쩍 흘러갔다 . 수잔나는 겨울방학 특강을 해야 하는 관계로 학생들이 방학을 한 것과는 상관없이 계속 출근을 했다 . 그런데 , 일이 많다는 핑계를 대고 집에 늦게 들어오는 나날은 여전히 계속되었다 . 얘가 일의 특성상 잔업을 할 리가 없는데 ....... 자주 늦었고 , 늦는 동안에는 연락이 잘 안 된다는 점에 한동안 잠잠했던 의심이 다시 고개를 들었다 . 지난번에 봤던 카톡 대화도 그렇고 , 정선 여행 갔을 때 단둘이 뒹굴던 걸 목격한 것도 그렇고 ....... 특히나 우리 넷이 함께 모이고 난 후에는 그녀의 행동이나 말투가 눈게 띄게 달라졌다 . 이제는 내가 두 눈으로 직접 확인을 해야겠다는 결심이 섰다 . 1 월 셋째 주의 토요일 . 수잔나는 주말 수업이 잡혔다고 하면서 집을 나가버렸고 , 나는 반신반의하면서 잘 다녀오라는 말만 했다 . 집 청소를 하면서 쓰레기통을 비우는데 , 봉투를 묶으려던 순간 무언가가 내 눈에 걸린다 . “?” 파란색으로 된 종이밴드였다 . 꼬깃꼬깃 접혀진 종이를 펼쳐보니 놀이동산 이름이 적혀 있고 , 지난 주 토요일의 날짜가 찍혀 있었다 . 그 날 수잔나와 뭘 했는지 가만히 떠 올려보는데 , 수잔나가 수업이 있다면서 아침 일찍 나가서는 저녁 늦게 들어왔던 날이었다 . 수업이 있다는 건 핑계고 누군가랑 놀이동산에 놀러간 것이다 . 같이 간 새끼는 100% 심주혁이라는 것을 알아챘다 . “ 하 .......” 나는 그걸 만지작거리면서 한 동안 고민에 빠졌다 . 두 눈으로 직접 보지 않았기에 마냥 의심해서는 안 된다 , 일 끝나고 어학원 동료들하고 같이 갔을 수도 있지 않냐는 생각은 잠깐 스쳤다가 이내 사라지고 만다 . 결국 , 나는 그 종잇조각을 주머니에 넣고는 쓰레기봉투를 집어 들고 밖으로 나왔다 . 전봇대 앞 쓰레기 집하장에 놓고 뒤돌아서는데 , 길고양이 한 마리가 어슬렁거리다가 ‘ 야옹 ’ 하고 운다 . 참 웃기게도 그 녀석이 내 마음을 대변해주는 것 같았고 , 나는 허탈하게 웃다가 휴대전화를 꺼내 들었다 . “ 여보세요 ?” “ 어머 , 경률아 !” 엘리나의 목소리는 참으로 밝았다 . 그 목소리를 듣는데 , 뭐랄까 , 착잡하던 가슴에 평온함이 스며들고 그녀가 이내 보고 싶어졌다 . “ 주말인데 뭐 하고 있어 ?” “ 음 ...... 경률이 네 생각하고 있었어 !” “ 풉 . 흐흐 .” 웃자고 한 그 말이 왜 이렇게 내 가슴을 후벼 팔까 ? 한숨을 내쉬다가 겨우 입을 열었다 . “ 보고 싶어 ......” “ 어 ?” “ 별 일 없으면 만날래 ? 데이트 하자 .” ----------- 대학로 북문 쪽으로 접어들자 , 주말을 즐기러 나온 사람들로 가득하다 . 수많은 인파 속에서 그녀와 다정하게 팔짱을 끼고 서로의 체온에 의지하면서 추위를 이겨낸다 . 살짝 배가 고프다는 말에 우리는 길가 포장마차 앞에 멈춰 서서 어묵을 먹는다 . 엘리나는 호호 불면서 한 입 베어 물었고 , 나는 옆에 있던 떡꼬치를 집어서 그녀와 한 입씩 나눠 먹는다 . 이따금씩 스치는 찬바람에 엘리나의 머리칼이 얼굴로 흩날릴 때마다 , 무심한 척 손을 들어 머리칼을 귀 뒤로 넘겨주었다 . 정말 별 것 아닌 이 순간이 참으로 행복한데 , 그 행복 뒤로는 항상 차가운 현실이 마주한다 . 엘리나는 절대 나의 여자일 수가 없다는 것을 ....... 그럼에도 괜찮았다 . 언제 끝날 지 모르는 관계이긴 하지만 ....... 걱정만 하기보다는 한 순간이라도 더 많은 추억을 남기고 싶었으니까 . 어묵꼬치로 배를 채우고서는 오락실로 들어갔다 . 총 게임 앞에 나란히 서서 같이 게임을 하기도 하고 , 인형 뽑기 기계 앞에서는 오기가 생겨서 5,000 원을 넘게 쓰기도 했다 . 내 노력과 정성이 통했던 것일까 ? 마침내 , 흰색 강아지 인형 하나가 딸려 나왔고 , 자기가 뽑지 않았음에도 엘리나는 크게 박수를 치며 기뻐했다 . 당연히 내가 가질 생각은 없었기에 그녀에게 건네주었다 . 그걸 들고서는 아이처럼 웃으며 기뻐하던 모습이 ...... 한 동안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았다 . 해가 지자 우리는 근처 룸식 술집으로 들어갔다 . 마주 보고 앉지 않고 , 일부러 나란히 앉았다 . 엘리나가 부대찌개를 먹고 싶다고 해서 그걸로 주문했다 . 술잔이 몇 번 오가자 , 분위기는 조금 더 부드러워졌다 . 나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 “ 근데 , 이렇게 나와도 괜찮아 ?” 엘리나는 건더기를 앞접시에다가 푸면서 대답했다 . “ 응 , 괜찮아 . 주혁이도 오늘 집에 없거든 .” 그렇겠지 . 그 새끼도 오늘 수잔나 만나러 나간 것이 틀림없을 것이니 . “ 요즘 주혁이랑은 ....... 어떻게 지내 ?” “ 못 지내지 ....... 말이 나왔으니까 하는 말인데 , 지금 당장 이혼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야 . 오늘 아침에도 일어나니까 말도 없이 나갔더라고 .” “ 그랬구나 .” 엘리나는 먼저 잔을 들어서 내게 건배를 청했다 . 한 잔을 비우기가 무섭게 또 한 잔을 따르고 들이킨다 . 무슨 일이 있었는 지는 모르겠지만 , 술 한 잔에 나쁜 기억을 털어 버리려는 것 같아 정말 안타까웠다 . 이쯤 되면 , 엘리나도 알아야 할 것 같았다 . “ 주혁이 말이야 ....... 아마 수잔나 만나고 있을 거야 .” 내가 그렇게 말하자 엘리나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 표정을 보아하니 , 아마 이미 알고 있는 듯했다 . 그래 ,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데 , 엘리나가 아직까지 모르고 있다는 게 말이 안 되지 . 그녀는 한숨을 길게 내쉬면서 말했다 . “ 나도 알고 있었어 .” “ 정말 ?” “ 응 .......” 보글보글 끓는 찌개를 보며 그녀는 말을 이었다 . “ 그거 알아 ? 주혁이가 요즘 수잔나랑 나랑 대놓고 비교질 한다 ?” “?” “ 그 전에는 안 그랬는데 , 작년에 처음으로 우리 넷이서 정선 여행 갔다 오고 나서부터야 .” “ 비교를 ....... 어떻게 하는데 ?” “ 수잔나처럼 좀 날씬해져 봐라 , 왜 이렇게 살을 못 빼냐부터 시작해서 , 일자리까지 . 그 어학원 그만둔 것도 내가 잘못했다는 식으로 몰아가질 않나 .” 말문이 막혔다 . 나는 적어도 수잔나를 엘리나와 비교하면서 깎아 내리지는 않았는데 ...... 엘리나는 목소리를 가다듬고 다음 말을 내뱉었다 . “ 그리고 뭐라는 줄 알아 ? 수잔나라고 말하지는 않았는데 , 요즘은 당신이랑 잠자리하기가 싫대 . 내 몸 보면 좆이 안 서네 어쩌네 ....... 흑 .” 엘리나는 북받쳐 왔던 울음을 삼켰다 . 나는 그녀를 끌어안고 내 품으로 안아왔다 . 엘리나가 어때서 ? 살집 조금 있는 게 그렇게 못 봐 줄 꼴인가 ? 이렇게 따뜻하고 착한 여자를 ....... 심주혁 개새끼 진짜 ....... 나는 속에서 올라오는 울분을 삼키고서 그녀의 머리칼을 부드럽게 쓸어주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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