엇갈린 부부들

2화. 엇갈린 부부들 - 제 2화

겨울밤관찰자72026. 03. 28. 16:12 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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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주가 또 시작됐다 . 오전 업무가 끝나고 점심시간이 찾아온다 . 특별한 알림도 없는데 괜히 휴대폰 화면을 켰다 껐다 하길 두 세 번 . 스스로도 어이가 없었지만 ,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 나는 이미 엘리나 생각에 하루 종일 사로잡혀 있었다 . 외로움과 익숙함에 젖어버린 결혼 생활에 한 줄기 빛처럼 다가온 그녀 . 단순히 , 같은 지역에 살았다는 공감대가 있어서가 아니라 그녀와 나는 통하는 것이 참 많다는 것을 첫 만남에서 알게 됐다 . 왜 , 그런 거 있지 않은가 ? 흔히들 코드가 잘 맞다고 하는 그런 순간들 . 12 시부터 6 시까지 영어 강사로 일한다던 그녀 . 시계를 보니 12 시가 훨씬 넘어 있었고 , 근무 중이라 연락이 될까 싶었지만 , 도저히 안 하고는 못 베길 것 같아서 메시지를 보냈다 . 참고로 , 영어에서는 한국어처럼 존칭이나 존댓말이 세세하게 구분되지 않기에 편의상 반말체로 대화를 번역하겠다 . [ 나 - 일하고 있어 ? ㅎㅎ ] 별로 기대하지 않았는데 , 읽음 표시가 금방 사라지고 답장이 왔다 . [ 엘리나 - 응 . 이따 오후에 있을 수업 준비하고 있어 . 너는 ?] 점심을 먹고 있다는 메시지를 보내면서 또 다시 대화가 이어진다 . 이따금씩 답장이 늦기는 했지만 , 말투나 내용으로 봐서는 나의 연락이 귀찮지는 않은 모양이다 . 그런 생각이 들었다 . 우리 둘 다 결혼을 했고 그녀도 그걸 잘 아는데 , 이렇게 유부남과의 대화를 즐긴다 ? 엊그제 친해진 사람으로만 대한다고 보기에는 너무 가깝게 느껴졌다 . 어쩌면 그녀도 나와 비슷한 처지이거나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건 아닐까 ? 나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메시지를 천천히 입력했다 . [ 나 - 오늘 저녁에 시간 괜찮으면 잠깐 커피 한 잔 할래 ?] 보내 놓고 의자 등받이에 몸을 기대며 한숨을 내쉬었다 . 방금 내가 무슨 짓을 한 건지 뻔히 알고 있었다 . 유부남이 , 그것도 아내 몰래 다른 여자와 단둘이 만나자고 먼저 제안한 셈이다 . 이건 위험했다 . 아니 , 이미 위험 속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 그런데도 내 손은 내 의지와 다르게 움직이고 말았다 . 채팅을 입력 중인 지 말줄임표가 떴다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 아마 그녀도 뭐라 해야 할 지 고민 중인 듯 하다 . 까이면 말고라는 식으로 채팅창을 바라보고 있었다 . [ 엘리나 - 좋아 ㅎㅎ ] 그걸 본 순간 ,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사무실 창가로 갔다 . 유리창에 비친 내 얼굴은 들떠 있었다 . ‘ 미쳤다 , 진짜 … ’ 속으로 욕하면서도 입꼬리는 내려가질 않았다 . * * * 약속 시간이 되어 카페 앞에서 전자담배를 한 모금 빨며 시간을 죽이고 있었다 . 휴대폰 화면을 스크롤 하던 중 , 멀리서 누군가가 내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 “ 경률 !” 엘리나였다 . “ 왔어 ?” 내가 손을 들어 가볍게 흔들었다 . 엘리나는 밝은 크림색 니트 스웨터를 입고 있었다 . 두툼하지 않지만 부드러운 짜임에 몸의 라인이 자연스럽게 드러났고 , 스웨터 아래로는 깊은 네이비 색 하이웨이스트 스커트를 입고 있었다 . 무릎 아래까지 내려오는 실루엣인데 , 스커트가 허리를 감싸는 방식 때문에 그녀의 넓고 풍만한 골반 라인이 굉장히 또렷하게 드러났다 . 순간 , 눈을 어디에 둬야 할지 조금 난감했을 정도였다 . 160 초중반 정도 되는 아담한 키인데도 골반이 유독 커 보였고 , 그 라인이 스웨터와 스커트 사이에서 자연스럽게 흐르면서 전체적인 비율이 균형감 있게 보였다 . 금발 머리는 바람에 흩날려 몇 가닥이 뺨 위로 떨어져 있었다 . 엊그제 펍에서는 어두워서 잘 안 보였는데 , 이렇게 밝은 곳에서 보니 그녀의 육감적인 몸매가 더욱 도드라졌다 . 나는 그녀의 옷을 홀딱 벗기고서 젖가슴과 보지를 주무르는 상상을 하고 있다 . 저 옷들을 다 벗기고 나서 보는 나체는 어떨까 ? “ 미안 , 좀 늦었지 ?” 그녀의 말에 정신이 번쩍 든다 . 그제야 나는 내가 그녀의 가슴을 응시하고 있었다는 걸 깨닫고서는 재빨리 시선을 거둬들였다 . “ 아 , 아니야 , 나도 방금 왔어 . 얼른 들어가자 .” 나는 최대한 자연스러운 척 웃으며 카페 안으로 들어갔다 . 우리는 커피 한 잔씩을 각자 주문하고서 창가 테이블에 앉았다 . 모임 이야기부터 시작해서 엘리나는 남편 얘기도 했고 , 나는 수잔나와의 결혼 생활에 대해 말했다 . 아주 친한 친구들 아니면 누구에게도 하지 않던 솔직한 얘기들이 그녀 앞에서는 술술 흘러나왔다 . 그리고 그 때 알 수 있었다 . 익숙함에 젖어 버린 결혼 생활 , 그리고 타향살이에서 오는 외로움에 그녀와 나도 누군가와 소통하고 기대고 싶어 했다는 사실을 . 가볍게 웃으면서 시작했던 대화는 점점 진지한 이야기로 바뀌어갔고 , 우리가 앉은 테이블에는 무거운 공기가 내려 앉았다 . 엘리나는 말을 끝내고 , 창밖으로 수없이 오가는 사람들을 보고 있다 . 그 눈빛이 참으로 외롭고 슬퍼 보였다 . 국적만 다르지 , 어찌보면 우리 둘은 같은 처지 , 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는 확신 . 한참을 망설이던 나는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 “ 오늘 일찍 들어가야 돼 ?” “ 아니 ? 왜 ?” “ 괜찮으면 ...... 술 한 잔 안 할래 ?” 엘리나는 테이블을 잠깐 바라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 내가 산다는 말을 하고서 자리에서 일어나는 우리 둘은 밖으로 나와서는 근처에 있는 고깃집으로 향했다 . 자리에 앉은 지도 얼마 안 됐는데 테이블 위에는 벌써 빈 맥주병 세 병과 소주 한 병이 올라가 있었다 . 엘리나가 고기 한 점을 쌈 싸먹으면서 말했다 . “ 한국식 바비큐는 언제나 먹어도 맛있어 , 헤헤 .” “ 솔직히 호주식 바비큐보다 이게 낫지 ?” “ 응 . 그나마 음식이 맛있어서 다행이지 , 그것까지 아니었다면 나 한국 생활 못 했을 거야 .” 가볍게 웃으며 시작했던 대화는 조금씩 무게를 갖기 시작했다 . 우리는 마주 앉아 고기를 굽고 있었고 , 숯불 위에서 지글거리는 소리만 잠시 대화를 대신했다 . 잔잔한 연기가 올라오고 , 사람들 떠드는 소리가 섞여 들려오는데도 우리 테이블만 조용한 것 같았다 . 맥주 한 잔을 서로 앞에 놓고 건배를 한 후 , 엘리나는 고개를 숙인 채 조용히 말을 꺼냈다 . “ 처음에 남편이 설득을 많이 했거든 . 한국 가면 호주에서보다 더 잘 살 수 있을 거라고 . 나도 연애할 때 한국에 몇 번 왔고 , 그 때의 좋은 기억이 있어서 결국 온 거야 .” “ 그랬구나 . 근데 , 지금은 어때 ?” “ 여행으로 오는 거랑 사는 거는 많이 다르더라고 . 생각보다 많이 외로웠거든 . 한국말도 완벽하지 않으니까 친구 만들기도 힘들고 . 다들 바쁘고 , 다들 자기들끼리만 친해서 들어가기 어렵고 .” 엘리나는 젓가락을 내려놓고 살짝 웃었는데 , 그 웃음은 명백히 외로움을 숨기는 웃음이었다 . “ 솔직히 말하면 ...... 요즘 고향 생각 진짜 많이 나 . 멜번이 이렇게 그리울 줄 몰랐어 .” 그 말에 나는 순간 말문이 막혔다 . 멜번 ....... 내가 처음 호주 유학 갔을 때 그 막막함 , 영어가 안 통해 답답했던 순간들 , 집에 돌아오면 누구도 나를 기다리지 않던 적막한 방의 공기 . 그 때의 기억이 한꺼번에 되살아났다 . 나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 나도 그랬어 . 호주 처음 갔을 때 , 말이 안 통해서 하루 종일 한마디도 못 하고 집에 들어간 날도 많았거든 . 사람들한테 섞이려고 노력해도 그 벽이 너무 두꺼워 보였고 . 뭔가 계속 뒤처지는 느낌 . 그래서 나도 진짜 많이 외로웠어 .” 엘리나는 내 말을 들으며 눈을 맞췄다 . 그 눈빛에는 공감 , 위로 , 그리고 조금의 안도감 같은 게 섞여 있었다 . “ 너도 그런 적 있었구나 .” “ 당연하지 . 그래서 , 네가 어떤 느낌인지 너무 이해돼 .” 그녀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 그저 공감받은 것뿐이었는데 , 그녀는 그 순간 조금 더 편안해진 표정을 짓고 있었다 . 고기 한 점씩 먹고 잠시 침묵이 흘렀다 . 그 침묵은 어색하지 않았다 . 마치 둘 다 비슷한 감정을 되새기고 있는 그런 조용함 . 조명이 고깃집 특유의 노란빛이라 그런지 , 그녀의 부드러운 얼굴선과 푸른 눈동자가 더 또렷하게 보였다 .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가슴 한 켠이 두근거리면서도 생각은 위험한 방향으로 흐르기 시작했다 . 맥주를 더 마시고 , 얘기도 깊어지고 , 어느 순간 ....... 나는 테이블 위에 올라가 있는 엘리나의 손을 슬쩍 만지게 되었다 . 하지만 그녀는 손을 빼지 않았다 . 조심스럽게 , 아주 천천히 그녀의 손가락을 감싸 쥐었다 . 식당 안의 온기에 누그러들었던 탓일까 , 엘리나의 손은 너무나도 따뜻했다 . 그녀가 우리의 포갠 손을 내려다보며 작은 숨을 내쉬었다 . 무슨 생각을 하는 지 알 수 없었다 . 단순한 호감인지 , 외로움인지 , 위로받고 싶은 마음인지 , 아니면 그 모든 것인지 . 하지만 그 순간만큼은 너무나 또렷했다 . 나는 작게 , 거의 속삭이듯 말했다 . “ 우리 ....... 친구할래 ?” 엘리나는 눈을 들어 나를 바라봤다 . 조금 놀란 듯 , 마음이 흔들리는 듯한 그 눈빛 속에서도 따뜻함을 볼 수 있었다 . 그리고 아주 천천히 , 고개를 끄덕였다 . “ 그럴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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