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혼으로 깨닫게 된 여자로서의 본성 (부제 : 나쁜 엄마의 고백) 1부

구름위속삭임72026. 03. 31. 05:50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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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만에 새로 한 번 작업해보는 중입니다. 언제나처럼 타 사이트에 올리는 것 금지고요. 제가 직접 핫썰에 올리고 있고 일단은 타 사이트에 올리지 않을 계획입니다. 그 이유는 요즘 하도 반포르노 운동이 심해서 이번에는 좀 하드하게 써 볼 예정이거든요. 혹시 문제될 것 같으면 운영자님이 보시고 쪽지 주시고 삭제해도 됩니다. *********************************** 이 이야기는 실화입니다. 내가 아는 지인의 이야기를 약간 각색해서 쓰고 있습니다. 등장인물의 사생활 보호를 위해서 이름, 지명, 시기는 모두 다 가명입니다. 초등학생 남자애를 꼬셔서 성관계를 가진 여선생처럼, 같은 경찰서의 모든 남자들과 관계를 가진 유부녀 여경의 이야기처럼 가끔은 현실에서 벌어진 일들이 그 어떤 포르노보다 기괴하고 음란할 때가 있습니다. 이 이야기도 그 중 하나입니다. ********************************** 프롤로그 남편과 난 동갑으로 둘 다 고아였습니다. 둘 다 부모가 누구인지도 모른 채 1990년 어느 겨울날 고아원 앞에 겨우 1주일 상간으로 놓여 있었다고 합니다. 그래서인지 우리 둘은 어렸을 때부터 거의 친남매보다 더 친한 사이로 자랐습니다. 뭐 내 고집에 남편이 주로 맞춰주는 게 일이었지만 말입니다. 남편은 평범한 외모에 비해서 전 어렸을 때부터 꽤 예쁜 편이었습니다. 그래서인지 중학생일 때부터 고아원 안에서 절 좋아하는 남자동기들이나 오빠들이 많았지만 내 눈에는 남편 밖에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우린 고 1때 원장님과 다른 애들의 눈을 피해서 첫관계를 가졌습니다. 남편과의 첫경험은 육체적으로 그렇게 좋은 편은 아니었지만 마침내 이 남자의 여자가 되었다는 사실에 정신적으로 큰 만족감을 느꼈던 것 같았습니다. 우린 그렇게 19살이 되어서 고아원을 나갈 때까지 남들의 눈을 피해서 관계를 가졌습니다. 콘돔을 쓰거나 내가 꾸준히 피임약을 먹거나 하지는 않고 그냥 사정을 조심하는 정도로만 피임을 했는데 놀랍게도 임신은 되지 않았습니다. 나중에야 남편이 무정자증까지는 아니더라도 소정자증으로 임신을 하기가 매우 어려운 체질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어쨌든 그렇게 우린 19살이 되었고 고아원을 나와서는 직장이 많아 보이는 경기도로 가서 동거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남편은 고등학교를 졸업하기 전에 대형면허를 따서는 그걸 이용해서 대형운수회사에 장거리 운전수를 취직을 했습니다. 난 미용기술을 배우면서 미용실에서 직원으로 일을 하기 시작했고요. 그렇게 1년 정도 지나서 내가 20살이 되었을 때 놀랍게도 난 임신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해 겨울에 우리 부부에게는 천사와도 같은 세상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외동딸인 제니가 태어났습니다. 아마 제니가 복덩이임에 틀림이 없었던 것 같았습니다. 애를 키우느라고 힘이 들기는 했지만 그 후로는 모든 게 다 잘 풀리는 것 같았거든요. 제니가 돌이 되었을 무렵 남편은 아는 선배에게서 중고 트럭을 꽤 싼 값에 구입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운송회사 직원이 아닌 개인 사업자로 일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다행히 남편은 성격과 인성이 좋았기 때문에 대형가전제품을 공장에서 받아서 지방의 대리점으로 운송하는 사업권을 따낼 수 있었습니다. 유일한 단점은 먼 지방으로 출장을 가는 일이 많았기 때문에 이제는 1주일에 거의 두 세 번 정도 밖에 같이 잠을 자지 못한다는 사실이었습니다. (네, 맞아요. 우리 부부는 여전히 부부 관계가 매우 좋았습니다. 그리고 남편이 사고로 저 세상에 갈 때까지 내 인생에서 남자라고는 남편 한 사람 뿐이었습니다.) 저 또한 이제 독립할 수 있을 정도로 기술을 익혔기 때문에 동네에서 작게 미용실을 운영하기 시작했습니다. 다행히 내가 손재주가 있는 편이어서 머리를 하기 위해서 찾아오는 동네 아줌마들과 혹은 내 미모에 반해서 찾아오는 남자 손님들이 꽤 있었기 때문에 미용실은 내 생각보다 빠르게 자리를 잡고 있었습니다. 여기서 잠깐 내 외모에 대해서 말해주겠습니다. 내 자랑같기는 한데 어느 날 TV 에서 아이돌 가수들이 나와서 노래를 부르는 쇼프로를 볼 때 남편이 반쯤 장난삼아서 이렇게 말한 적이 있었습니다. “어, 저 가수, 당신이랑 엄청 닮았는데. 모르는 사람이 보면 자매인 줄 알겠어. 진짜로 당신 친동생이거나 친척 아닐까?” 남편이 보며 그렇게 말한 가수는 키오프 (키스 오브 라이프) 의 나띠였습니다. 잘 모르는 분을 위해서 말하자면 나띠는 태국 출신의 가수로 167센티의 키에 탄탄하고 날씬한 글래머의 몸매에 매우 섹시한 얼굴을 지닌 가수입니다. 반쯤 농담으로 듣기는 했지만 그러고 보니 나띠와 매우 닮은 것 같기도 했습니다. 전 여자치고는 꽤 큰 편인 170센티의 키에 그렇게 운동을 열심히 하지 않아도 날씬하고 탄탄한 몸매를 유지할 수 있었고 원래 D 컵으로 꽤 큰 편이었던 젖가슴은 딸아이를 낳은 이후에는 더욱 더 커져서 이제는 거의 E 컵이 되어 있었으니까요. 쉽게 설명하자면 타짜에 나온 김혜수 정도의 크기라고 보면 될 것 같습니다. 그리고 얼굴도 전형적인 한국미인이 아니라 약간 동남아 느낌이 나는 섹시미인형으로 부모 중 한 분이, 혹은 두 분 다, 동남아인이 아닐까 하고 어렸을 때 생각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렇게 딸아이인 제니가 10살이 되었을 무렵 우린 어느 정도 자리를 잡을 수 있었습니다. 남편은 트럭을 살 때 빌렸던 돈을 모두 다 갚을 수 있었고 우린 은행대출이 반이긴 하지만 오래된 30평짜리 아파트를 2억에 살 수 있었으니까요. 그렇게 우리 세 가족이 한참 행복에 부풀어올라 있었을 때였습니다. 하지만 불행은 바로 그럴 때 찾아온다는 말이 맞았습니다. 아파트를 산지 2년 정도 지났을 때였습니다. 제니가 초등학교 6학년이었던 그 때, 여름의 장마가 막 시작되기 시작한 7월 초의 어느 날이었습니다. 평소처럼 지방으로 배송을 나간 남편은 두 번 다시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그 날은 전국적으로 소나기가 많이 오는 날이었습니다. 고속도로가 너무 막히니까 남편은 한밤중인데도 산기슭을 통해 나 있는 국도를 달리고 있었던 것 같았습니다. 그러다가 갑자기 도로로 튀어나온 고라니를 피하려고 한 것인지 아니면 깜빡 하고 졸음운전을 한 것인지 몰라도 빗길에 미끄러지는 바람에 도로 옆의 가드레일까지 뚫고서 낭떠러지로 떨어지고 만 것입니다. 다음 날 아침 경찰에게 걸려온 그 전화를 받았을 때 난 너무 놀라서 그 자리에서 기절하고 말았습니다. 그 후로 약 2주일 동안은 도대체 어떻게 지나간 것인지 아직도 기억이 제대로 나지 않습니다. 마치 나 혼자서 뿌옇게 안개가 나 있는 길 위를 한참동안 걸어가고 있었던 것 같은 기분 밖에는 말입니다. 아까도 말했듯이 우리 부부는 둘 다 고아였기 때문에 이런 상황에서 우릴 도와줄 직계 가족이나 친척 어른 같은 분들은 한 명도 없었습니다. 내 미용실이 있는 상가의 건물주인 박 관장님이 아니었다면 남편의 장례도 제대로 치르지 못했을 것입니다. 나중에 내 새남편이 된 박 관장님에 대해서는 조금 후에 더 자세히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어쨌든 박 관장님의 도움으로 운송회사와 보험회사가 얽힌 금전 문제며 사고경위를 조사하기 위해서 찾아온 경찰관들을 상대하는 일이며 남편의 장례식이며 사망신고며 모두 다 관장님이 알아서 처리해 주었으니까요. 뭐 나에게 어느 정도 사심이 있었다고는 해도 매우 고마운 분임에는 틀림이 없었습니다. 자, 이제 관장님에 대해서 얘기하겠습니다. 박 진철 관장님은 우리 부부보다 10살 연상이 남자로 자라온 고향은 다르지만 우리와 마찬가지인 고아로 엄청난 덩치를 지닌 남자였습니다. 관장님은 그렇게 잘생긴 얼굴은 아니었습니다. 조금 전에 TV 에서 나띠를 보고서 남편이 나더러 닮았다고 할 때처럼 얼마 전 중증외상센터에서 외과과장 역할을 한 윤경호라는 배우를 봤을 때 전 바로 박 관장님이 떠올랐습니다. 얼굴이 그 배우와 엄청 닮았거든요. 대신 관장님은 190센티의 엄청 큰 키에 100kg 의 완전 근육으로 뒤덮인 보디빌더와도 같은 몸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그 지역에서는 고등학생 때부터 그 엄청난 덩치와 험악한 인상, 싸움 실력으로 유명했다고 하더라고요.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관장님은 해병대에 지원을 했는데 그 실력 (?) 을 알아본 교관이 아예 특수부대로 데려가 버렸다고 하더라고요. 얼마 전에 종영한 ‘김부장’ 이라는 드라마에 나오는 북한침투를 목적으로 하는 특수부대였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 드라마에 나오는 것처럼 진짜로 북한에 침투해서 공작을 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고 우리 부부와의 술자리에서 웃으면서 얘기를 하더라고요. 그런 드라마는 전부 다 뻥이라고 하면서요. 대신 월급이며 수당 같은 건 일반 사병들보다 많이 받았다고 하더라고요. 그렇게 군대에서 4년 정도 하사관으로 근무하다가 거기에서 알게 된 선배와 같이 군대를 나와서 소위 말하는 보디가드라는 경호회사를 차렸다고 했습니다. 의외로 거기서 돈을 많이 벌었고 - 그 얘기는 자세히 하지 않지만 완전 100% 합법적인 일들만 한 것은 아니라는 눈치를 받았습니다 . - 40 살이 되었을 때 그 동안 모아놓은 돈으로 지금 내가 운영하고 있는 미용실이 있는 5층짜리 건물을 매입했다고 하더라고요. 그리고 그 5층에서 헬스클럽을 운영하기 시작했다고 하더라고요. “돈 때문이 아니라 이 나이에 벌써 놀고만 있을 수는 없잖아. 뭐 운동을 원체 좋아하기도 하니까 취미 겸 일을 하는 거지.” 라고 말을 하면서요. 관장님은 30대 초반에 한 번 결혼을 했다가 몇 년 전에 이혼을 한 경력이 있었습니다. 40대 초반의 이혼남에다가 잘생긴 얼굴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경기도 지방이긴 하지만 5층짜리 상가의 건물주에다 큰 키에 근육질의 몸매를 지니고 있었기 때문에 관장님은 동네 아줌마들 사이에서 꽤 인기가 많은 편이었습니다. 미용실에 오는 3, 40 대, 심지어 50대인 아줌마들조차 가끔 나에게 “저기, 사장님, 혹시 5층의 헬스장 관장님이랑 잘 아는 사이에요?” 라고 물어보면서 관장님에 대해서 물어보는 여자들이 꽤 많이 있었거든요. 나중에 친한 사이가 되고 난 후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남편의 말로는 여친까지는 아니고 두 명 정도 만나고 있는 섹파가 있다고 하는데 확실하지는 않다고 했습니다. 뭐 나와 사귀는 사이도 아닌데 섹파가 두 명이나 있다는 말에 내가 왜 괜히 심술이 났는지 모르겠네요. 그렇게 박관장님과는 2년 전 내가 그 건물 1층에 있는 빈 상가에 미용실을 차리면서부터 알게 되었습니다. 관장님은 우리 부부가 자신과 같은 고아라는 사실을 알게 된 후에는 우리 부부에게 매우 잘해주었습니다. 월세도 10만원이나 깎아주었을 뿐만 아니라 무슨 기념일이면 - 명절이나 우리 가족들의 생일날 같을 때 - 항상 선물을 챙겨주었으니까요. 또 우리 부부와 같이 저녁을 먹거나 술을 마시며 어울리는 일이 많아졌습니다. 뭐 아내가 없이 혼자 살고 있었으므로 집밥을 먹을 일이 거의 없을 거라는 생각에 우리 집에 저녁을 먹으러 오라며 자주 초대도 해 주었고요. 그럴 때마다 관장님은 딸인 제니에게 좀 과하다 싶을 정도로 용돈을 주곤 했습니다. 딱히 친척들이 없었기 때문에 다른 애들처럼 어른들에게 용돈을 받을 일이 거의 없었던 제니는 곧 관장님을 큰삼촌이라고 부르면서 매우 잘 따르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관장님은 딱히 가족이나 친한 친구가 없는 우리 부부로서는 진짜로 친형이나 친오빠와도 같은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남편이 그렇게 갑자기 사고로 돌아가게 되었을 때도 자신의 인맥을 총동원해서 경찰에 찾아가서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인지 알아보거나 자동차 보험회사와 보험금에 대해서 협상하거나 운송회사에 입힌 - 사고 당시 고가의 가전제품을 운송하고 있었는데 그게 다 불타 버렸으니까요 . - 손실금 보상에 관한 일들을 처리해주었습니다. 다행히 졸음운전이나 음주운전같은 게 아닌 걸로 결론이 나서 남편의 과실은 거의 없는 것으로 결론이 났습니다. 운송회사에 입힌 손해액은 자동차 보험회사에서 모두 다 해결해주기로 했고 대신 우리 가족에서 주는 보상금은 거의 없는 수준이나 마찬가지였습니다. 뭐 저로서는 그 사고로 빚이 생기지 않았다는 사실에 고마울 지경이었습니다. 서론이 너무 길어지는 것 같네요. 이제 다 끝나가니까 조금만 더 참고 들어주세요. 남편 때문에 더 이상 빚은 생기지 않았지만 남편과 같이 맞벌이로 살아가던 우리 부부에게는 경제적으로 큰 손실이 생긴 거나 다름이 없었습니다. 게다가 남편의 장례식이며 사고 뒤처리를 하느라고 거의 1달 이상 미용실 문을 닫고 있었기 때문에 미용실 손님도 꽤 많이 떨어진 상태였습니다. 그리고 이제 곧 딸아이가 중학교에 들어갈 건데 다들 아시겠지만 학원이니 뭐니 중학생이 되면 초등학생 때와는 돈 들어가는 금액의 앞자리가 달라지잖아요. 남편의 갑작스런 사망에서 정신을 추스리기도 전에 전 가계부 걱정을 해야 했습니다. 다행히 관장님은 3달 동안 월세는 주지 않아도 괜찮다고 말을 했지만 그래도 매달 적자가 되고 있었습니다. 아파트 대출을 위해 빌렸던 돈은 아직 7천만원도 더 남아 있었고 남편이 사망했다는 것을 이제 곧 은행에서 알게 되면 내년에 있을 대출 연장도 어떻게 될지 모르는 상황이었습니다. 이런 힘든 시기에 관장님은 저에게 큰 위안이 되어주고 있었습니다. 미용실에 출근해서 오전 10시쯤이 되면 관장님이 꼭 커피를 사다가 갖다주거나 점심 때는 맛있는 도시락을 배달시켜 준다거나 하면서 말이죠. 그리고 1주일에 두 번 정도는 꼭 저희 모녀에게 저녁을 사주고 있었습니다. 그 때문인지 아빠의 죽음 때문에 매우 우울해하던 제니 역시 빠르게 기운을 되찾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물론 저에게도 매우 많은 위안이 되고 있었고요. 자, 서론이 너무 길었네요. 지금부터 본격적인 본론으로 들어가겠습니다. 제 1장 **************************** 자위 행위가 스트레스와 불안을 줄일 수 있나요? 자위 행위는 많은 사람들에게 스트레스와 불안을 줄이는 데 실제로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오르가슴을 경험할 때 뇌는 신경계를 자연스럽게 진정시키는 기분 좋은 화학 물질의 혼합물을 방출합니다. 이것은 단순한 속설이 아닙니다. 이것은 기본적인 생물학이 작동하는 것입니다. 화학적으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살펴봅시다. 성적 흥분과 오르가슴 동안 뇌는 신체의 자연적인 통증 완화제인 엔도르핀을 방출합니다. 또한 옥시토신, 때로는 유대감 또는 이완 호르몬이라고도 하는 것이 급증합니다. 도파민 수치도 올라가 즐거움과 보상의 느낌을 만듭니다. 이 화학 물질은 함께 작용하여 주요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르티솔 수치를 낮춥니다. 코르티솔 수치가 낮아지면 신체가 스트레스 반응 모드에서 벗어납니다. 심장 박동이 느려지고 근육이 이완되며 정신이 종종 더 맑고 차분해집니다. 많은 사람들이 잠들기 전에 자위 행위를 하면 더 잘 잘 수 있다고 말합니다. 이완 반응은 잠을 방해하는 빠른 생각과 신체적 긴장을 완화할 수 있습니다. 불안이 밤에 정신을 산만하게 만든다면, 이 자연스러운 진정 작용이 약간의 완화를 제공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이 모든 사람에게 똑같이 작용하는 것은 아닙니다. 어떤 사람들은 후에 편안하고 만족감을 느끼는 반면, 다른 사람들은 피곤하거나 죄책감을 느끼거나 심지어 더 불안해할 수도 있습니다. 당신의 감정적 반응은 당신의 신념, 정신 건강, 삶의 맥락을 포함한 많은 요인에 달려 있습니다. - 자위 행위 이해하기 : 스트레스, 불안, 에너지 수준에 미치는 영향 (헬스 라이브러리 중에서 발취 ) - *********************************** 남편의 장례는 3일장으로 치렀습니다. 직계 가족이나 친척들도 없어서 찾아올 조문객들도 거의 없었지만 남편이 사고로 죽은 날 아침에 경찰에서 전화가 왔고 시신을 인계 받아서 집 근처의 장례식장으로 모시고 온 것은 그 다음 날 새벽이 되어서였으니까요. 아까도 말했지만 그 3일 동안 뭐가 어떻게 된 건지 저는 거의 기억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 장례식 내내 빈소 앞에서 쓰러지다시피 누워서 거의 울고만 있었으니까요. 아까도 말했지만 장례 절차는 모두 다 관장님이 알아서 해 주셨습니다. 장례식장을 정하는 것도 조문을 받는 것도 화장장을 예약하는 것도 모두 다 말이죠. 3일째 되는 날 남편을 화장해서 납골당에 모시고 난 후에야 전 딸아이를 데리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누군가는 화장을 하면 집에 돌아와서 따로 제사를 또 지내면 안 된다고 하는데 전 도저히 그렇게 할 수가 없었습니다. 집에서 따뜻한 밥 한끼도 못 먹이고 이대로 남편을 보낼 수는 없었으니까요. 전 당장이라도 쓰러질 것 같은 몸을 추스려서 새밥을 앉히고 남편이 좋아하던 어묵국과 소고기, 그리고 과일 몇 개만 차려서 간단히 차례상을 차렸습니다. 집에는 저와 딸아이, 그리고 박관장님 뿐이었습니다. 우리 셋은 그렇게 간단히 제사를 마쳤습니다. 내가 마지막으로 절을 하고 술을 따라주고 나자 관장님은 뒷정리는 내가 할 테니까 저에게 그만 방으로 들어가서 쉬라고 했습니다. 딸아이는 벌써 자기 방으로 들어가서 침대 위에서 거의 쓰러지듯이 누워서 잠이 들어 있었습니다. 내가 치워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제사가 끝나고 나자 난 도저히 손가락 하나 까딱한 기력이 없었습니다. 나중에 생각해 보니 제사가 끝나자 관장님이 거의 날 안고서 방으로 데리고 들어가서 침대 위에 눕혀준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나 또한 어느 새 잠이 든 건지 정신이 들었을 때는 거의 새벅 1시가 다 된 것 같았습니다. 난 침대에서 일어나서 거실로 나가 보았습니다. 아직 제사상은 그대로 있었지만 제사 음식들은 모두 다 치워져 있었고 남편의 영정사진과 술 한잔만이 상 위에 그대로 놓여져 있었습니다. 아마 관장님이 마지막으로 술을 따라놓고서 자기 집으로 돌아가신 것 같았습니다. 난 그렇게 남편의 영정사진을 바라보면서 멍하니 제사상 앞에 앉아 있었습니다. 그리고 한쪽 구석에 놓여 있던 술주전자를 들어서 - 그 안에는 관장님이 따라놓은 것인지 술이 담겨 있었습니다 - 빈 술잔에 술을 따라서 빈속에 마시기 시작했습니다. “기영 (남편이름) 아, 너 혼자만 그렇게 가면 어떡해. 이제 나 혼자서 제니를 어떻게 키우라고.” 난 그렇게 혼잣말을 하면서 계속해서 술을 마시기 시작했습니다. 원래 전 술을 꽤 하는 편입니다. 하지만 그 날은 빈속에 마셨기 때문인지 남편을 잃은 슬픔 때문인지 진짜로 빠르게 취하고 있었습니다. 어느 새 난 나도 모르게 옷을 벗기 시작했습니다. 술기운 때문에 몸이 더워서 그랬던 것 같습니다. 정신을 차려보니 난 브라도 벗어던지고서 팬티 하나만 몸에 걸친 채 완전히 알몸이 되어 있었습니다. 그 순간 겨우 5일 전에 - 그러니까 남편이 마지막으로 집을 떠나기 바로 전날에 - 남편과 뜨겁게 사랑을 나누었던 기억이 생생하게 떠올랐습니다. 네, 아까도 말했듯이 남편과 첫섹스를 하고서 거의 15년이나 지난 지금까지도 남편과 난 매우 뜨거웠습니다. 남편이 2, 3 일 동안의 출장에서 돌아오고 나면 우린 그날 밤마다 뜨겁게 사랑을 나누고 있었으니까요. 심지어 아직도 남편은 하룻밤에 두 번은 거뜬히 날 박아줄 수 있었습니다. 컨디션이 좋을 때에는 세 번까지도 가능했습니다. 물론 내가 그만큼 남편의 자지를 잘 세워주기도 했지만 말입니다. 어느 새 난 팬티까지 벗어서 옆으로 휙 던진 후 남편의 영정사진을 보면서 그 앞에서 자위를 하고 있었습니다. “기영아. 이거 보여? 네가 그렇게 빨아대던 젖꼭지라고. 그날 밤에도 내가 막 놀렸잖아. 그렇게 세게 빨아도 젖은 안 나온다고 말이야.” 난 그렇게 남편의 영정사진을 보면서 한손으로는 내 젖가슴을 마구 주물러대면서 다른 손은 사타구니 사이로 가지고 가서 외음순 사이의 민감한 골짜기를 마구 문지르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도저히 흥분이 느껴지지 않고 있었습니다. “아, 맞다.... 난 한 번도 자위를 해 본 적이 없었지. 기영아. 왜냐 하면 내 옆에는 항상 네가 있었으니까.” 뭐 누가 들으면 놀라운 일이겠지만 사실 난 한 번도 자위를 해 본 적이 없었습니다. 왜냐 하면 우리 둘은 사춘기에 접어든 이후로 남들의 눈을 피해서 서로에게 애무를 해주고 있었으니까요. 실제로 섹스, 그러니까 삽입을 한 것은 고 1의 여름방학 때였지만 사실은 중학교 1학년 때부터 서로의 성기를 가지고 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난 한 번도 자위를 해 본 적이 없었습니다. 성에 눈을 뜨기 시작한 중학교 1학년의 여름방학 때부터 우린 69자세로 서로의 보지와 자지를 상대방이 쌀 때까지 빨아주고 있었거든요. 그래서 이렇게 처음으로 내 몸을 만지면서 자위를 하는 기분은 너무나 묘하게 느껴지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남편이 내 몸을 애무해줄 때의 기억을 되살리면서 난 서서히 내 성감대가 어디가 얼마나 민감한지 알아가기 시작했습니다. 아, 젖꼭지는 이렇게 매우 아플 정도로 꼬집어야 찌릿찌릿해지는구나. 음핵도 마찬가지인 것 같은데. 어떤 여자들은 부드럽게 애무해주는 것을 좋아한다고 하는 것 같은데 난 이렇게 세게 꼬집어주는 게 더 좋은 것 같아. 보지 속에는 손가락 하나보다는 두 세 개를 집어넣고서 세게 쑤셔대는 게 더 좋은 것 같고. 하지만 그렇게 자위를 하고 있으니 점점 이상한 위화감이 느껴졌습니다. 왜냐 하면 죽은 남편은 한 번도 날 이렇게 아플 정도로 세게 애무해준 적이 없었거든요. 남편은 항상 내가 깨어지기 쉬운 도자기 인형처럼 매우 부드럽게 애무해주곤 했었으니까요. 클리토리스의 애무도 한 번도 그걸 입안에 넣고 빨아준 적이 없었고 항상 혀로 그 위를 부드럽게 살살 핥아주기만 했었습니다. 그리고 보지 속으로 손가락을 집어넣은 적도 거의 없었던 것 같네요. 그리고 그 무엇보다도 남편인 기영이의 자지는 그렇게 큰 편이 아니었습니다. 남편인 기영이는 나와 거의 똑같은 170센티의 키에 귀여운 얼굴, 마른 몸집을 하고 있었습니다. 자지 또한 그런 기영이의 생김새와 어울리게 매우 귀여운 편이었습니다. 완전히 발기했을 때도 10센티가 간신히 될 정도였고 둘레는 지름이 3센티 정도였던 같습니다. 즉 내 손가락 두 개 정도면 거의 비슷한 굵기였던 겁니다. 하지만 지금 난 보지 속에 벌써 손가락을 3개나 집어넣고 있었습니다. 아직까지 내 보지가 이렇게까지 크게 늘어났던 적은 거의 없었던 것 같은 기억이 들었습니다. 딸아이인 제니를 낳을 때에도 자궁입구가 잘 안 열려서 결국 제왕절개로 애를 낳았거든요. 이제 난 왼손으로는 젖꼭지를 세게 꼬집어대면서 오른손은 집게, 중지, 약지까지 세 손가락을 보지 속으로 최대한 깊이 밀어넣고 있었습니다. 보지가 조금 찢어지는 것 같은 고통과 함께 찌릿찌릿한 전류가 흐르는 게 느껴졌습니다. 그건 놀라운 기분이었습니다. 왜냐 하면 남편과 섹스를 할 때에 난 한 번도 그런 찌릿찌릿한 기분을 느껴본 적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남편과 섹스를 할 때 기분이 좋지 않았다는 얘기는 아닙니다. 남편과 섹스를 할 때 난 항상 오르가슴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남편이 그 작은 (?) 자지를 내 보지 속으로 모두 다 집어넣고서 열심히 박아주고 있을 때면 지금 내가 느끼고 있는 이런 짜릿짜릿, 찌릿찌릿한 기분까지는 아니더라도 매우 기분이 좋아졌고 온몸이 부르르 떨리는 기분이 느껴졌던 것입니다. 난 당연히 그게 오르가슴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원래 남편과 섹스를 할 때와 나 혼자서 자위를 할 때 느껴지는 기분이 이렇게 다른 걸까? 그게 아니면 남편의 영정사진 앞에서 이렇게 자위를 하고 있기 때문에 평소와 다른 반응을 느끼고 있는 것일까?’ 난 그런 위화감을 느끼면서 손가락을 최대한 깊이 밀어넣었다가 손끝이 거의 빠져나갈 때까지 끄집어낸 후 다시 안으로 세게 밀어넣었습니다. 보지 속의 질주름들이 평소와는 - 그러니까 남편과 섹스를 했을 때와는 - 다르게 최대한 많이 늘어나면서 처음 느껴보는 쾌감이 밀려왔습니다. 굳이 설명하자면 등이 가려워서 계속해서 손으로 긁고 있었는데 등 가운데 부분은 손가락이 닿지 않아서 계속해서 가려웠던 적 있잖아요? 그런데 갑자기 손이 쭈욱 늘어나면서 그 가려웠던 부분을 신나게 긁기 시작한 것 같은 기분이랄까? 그 때문인지 몰라도 평소와는 다르게 보지에서 평소보다 더 많은 애액이 흘러나오는 것 같았습니다. ‘맞아, 확실히 평소보다 더 많이 나오는 것 같아.’ 남편과 섹스를 할 때 난 항상 애액이 잘 나오는 편이었습니다. 남편과 두 번 세 번 연달아서 삽입을 할 때에도 보지가 말라서 아팠던 적이 한 번도 없었으니까요. 하지만 지금처럼 마치 고장난 수도꼭지처럼 보지 구멍 밖으로 줄줄 흘러넘칠 정도로 나왔던 적은 한 번도 없었습니다. 지금은 보지 아래쪽으로 투명한 게 아니라 새하얀 씹물이 줄줄 흘러내리고 있었습니다. 가랑이 사이로 서서히 웅덩이가 생겨나는 게 보여지네요. 보지 속에서 미끄러운 애액이 흘러넘치자 난 조금 전보다 더욱 더 빠르게, 더욱 더 세게 손가락으로 보지를 박아댈 수 있었습니다. “아아아아아..... 좋아아아아!” 난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남편은 아직까지 나와 셀수도 없을 만큼 많이 섹스를 하면서 한 번도 내가 지금 손가락으로 쑤시는 것만큼 그 자지를 세고 빠르게 박아준 적이 없었습니다. 처음에 말했듯이 남편은 내가 아주 다치기 쉬운 인형인 것처럼 항상 섹스를 하곤 했습니다. 삽입을 하고 좃질을 할 때에도 매우 천천히 매우 부드럽게 말이죠. 그러다가 사정이 가까워져서야 지금 내가 손가락을 움직이는 속도의 7,80% 정도로 날 박아주곤 했습니다. 물론 내가 남편의 위로 올라가서 여성상위로 섹스를 할 때에도 가끔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럴 때면 항상 난 허리를 아래위가 아니라 앞뒤로 흔들어대고 있었습니다. 그래야 남편의 작은 자지가 내 보지 속을 가득 채워주고 있는 포만감과 함께 딱딱하게 발기되어 있는 클리토리스를 남편의 치골에 문질러서 최대한 쾌감을 느낄 수 있었거든요. 가끔, 아주 가끔 내가 너무 흥분해서 마치 스쿼트를 할 때처럼 아래위로 허리를 흔들어댔던 적도 있었는데 그럴 때면 항상 10초도 채 되지 않아서 남편의 자지가 내 보지에서 빠져나가 버려서 흥분이 팍 줄어들고 말았습니다. 신혼 초에 그렇게 아래위로 허리를 빠르게 흔들어대다가 흥분이 휙 식어버리는 경험을 하고 난 이후부터는 난 여성상위를 할 때 항상 허리는 앞뒤로 흔들어대고 있었습니다. 그것도 내 치골을 남편의 치골에 최대한 세게 밀착시킨 채 말입니다. 아, 그리고 섹스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한 가지만 더 말하겠습니다. 남편과의 섹스에 있어서 유일하게 내가 불만으로 느꼈던 부분은 남편은 한 번도 후배위 자세로 날 박아주지 않았다는 거였습니다. 나도 섹스에 대해서 그렇게 호기심이 약한 성향은 아니었기 때문에 그 자세로도 해보고 싶은 호기심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한 번은 남편에게 “저기 이번에는 뒤로 한 번 박아줘.” 라고 부탁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남편은 싫다고 하는 게 아니겠습니까? 평소에 내 부탁을 거절하는 적이 거의 없는 남편이었기 때문에 난 처음에 그 [뒤로] 가 내가 보지가 아니라 항문, 즉 똥구멍에 박아달라는 뜻으로 착각했는가 싶어서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해주었습니다. “똥구멍에 박아달라는 말이 아니라 뒤로 하자고. 후배위 자세로! 그러니까 개들이 하는 식으로 말이야.” 그러자 놀랍게도 남편이 진짜로 질색을 하면서 말하는 게 아니겠습니까? “그러니까 내가 싫다는 거야. 당신은 암캐가 아니라고. 내 눈에 당신은 천사가 환생한 거랑 말이야.” 라고 하면서 정상위 자세로 내 위에 엎드려서 더욱 더 열심히 날 박아주기 시작했습니다. 난 남편이 날 그렇게 애지중지 여기고 있다는 사실에 감동한 채 당연히 그 다음부터는 한 번도 후배위 말을 꺼내 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난 아예 바닥에 등을 대고서 똑바로 누워 버렸습니다. 그리고 지금 내 보지를 쑤시고 있는 게 내 손가락이 아니라 남편의 자지라고 상상하기 시작했습니다. “아아아.... 기영아.... 네가 너무 보고 싶어.... 아윽.... 그... 그래.... 거기.... 거기를 더 세게 박아 줘! 좋아아아! 그렇게....” 난 그렇게 혼잣말을 하면서 내 손가락을 더욱 더 세게 흔들어대기 시작했습니다. 이제 보지 속에 씹물이 완전히 잔뜩 고여 있는지 내 손가락이 안으로 들어갈 때마다 “푸슉! 프슛!” 하는 소리와 함께 마치 물총을 싸듯이 그 안에서 약간 흰색기가 도는 물줄기가 뿜어져 나오고 있었습니다. 난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남편에게 애무를 당할 때에도 삽입섹스를 할 때에도 지금처럼 이렇게 씹물이 뿜어져 나온 적이 한 번도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난 몸이 점점 더 뜨겁게 달아오르는 게 느껴졌습니다. 하지만 웬지 모르게 뭔가가 2% 부족한 것도 같이 느껴지고 있었습니다. ‘아아아.... 왜 이러지? 손가락 만으로는 뭔가 부족한 것 같아. 기영이 자지에 비하면 내 손가락 3개가 더 굵은 것 같은데.... 아으으.... 지금도 보지의 질벽이 시원하게 문질러지는 것이 느껴지고 있어..... 내 손가락이 너무 짧아서 그런가?....... 내 손가락이 아무리 길어도 남편의 자지보다는 작게 느껴질 테니까.... 더 긴 게 필요한데.... 어디서 좀 더 긴 걸 구하지?’ 난 그런 생각을 하면서 주위를 둘러보았습니다. 그 순간 아직도 제사상 위의 촛대에 꽂혀 있던 양초가 내 눈앞에 들어왔습니다. 남편의 영정사진 바로 옆에 있는 촛대에 꽂혀 있는 양초가.... 마치 남편이 나에게 이걸 사용하라고 말해주는 것 같은 바보 같은 생각까지 들었습니다. 난 즉시 몸을 일으켜서는 촛대에서 그 양초를 뽑아냈습니다. 그건 이번 남편의 제사를 위해서 장례식장에서 준비해준 새양초였습니다. 조금 전 제사를 지낼 때 잠깐 불을 붙였다가 20분도 안 되서 껐기 때문에 아직 새 양초와 거의 다를 바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아직도 길이가 22센티 정도였고 둘레의 지름은 4센티 정도 되어 보였습니다. 난 양초의 심지가 튀어나와 있는 윗부분을 붙잡고서 그 끝부분을 내 가랑이 사이를 향해서 가져갔습니다. 딱딱한 양초의 끝부분이 내 보지입구를 서서히 벌리면서 안으로 미끄러져 들어가는 감촉이 느껴졌습니다. “아아아아.... 좋아아아아....” 그 순간 내 입에서 나도 모르게 쾌감의 신음소리가 튀어나왔습니다. 이렇게 길고 굵은 양초를 내 보지 속으로 집어넣다니..... 겨우 5일 전만 하더라도 상상도 하지 못했을 행위를 난 아무런 죄책감도 없이, 엄청난 쾌감을 느끼면서 하고 있었습니다. “고마워, 기영아.” 난 남편의 영정사진을 보면서 계속해서 그 양초의 끝부분을 내 보지 속으로 밀어넣었습니다. 마치 그 양초가 남편의 자지라고 되는 것처럼..... 물론 그 양초는 남편의 자지에 비하면 두 배는 더 길었지만 말입니다. 난 어느 새 내가 붙잡고 있던 끝부분 (아니 윗부분이라고 해야 할까요?) 을 제외하고 양초의 몸통을 거의 다 내 보지 속으로 집어넣고 있었습니다. 처음부터 이 양초를 내 보지 속으로 집어넣었다면 - 안쪽이 너무 말라 있었을 테니까 - 까끌까끌한 양초의 딱딱한 표면 때문에 상처가 났을지도 몰랐습니다. 하지만 지금 내 보지 속은 진짜로 홍수가 난 것처럼 흠뻑 젖어 있었습니다. 그 증거로 내가 양초를 집어넣고 있는 동안에도 보지 속에 가득 차 있었던 씹물이 그 양초의 부피에 밀려서 양초와 내음순 사이의 좁은 틈 사이를 통해서 밖으로 줄줄 흘러내리고 있었으니까요. 아마 22센티의 길이 중에서 거의 18센티 정도가 모두 다 내 보지 속으로 들어온 것 같았습니다. 난 양초의 끝이 내 자궁경부를 세게 누르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당연한 말이지만 - 남편의 자지는 그 정도로 길지 않았기 때문에 - 난 이렇게 뭔가가 자궁경부를 누르는 느낌을 난생 처음 느끼고 있었습니다. 그건 약간의 통증을 동반한 채 진짜로 찌릿찌릿한 전류가 자궁 속을 흐르는 것 같은 강렬한 쾌감을 선사해주고 있었습니다. 보지 속이 완전히 가득 차는 것 같은 엄청난 포만감과 같이 말입니다. “아으윽! 너무 깊어! 아욱! 너무 좋아아아! 보지가 진짜 가득 차는 것 같아!” 난 나도 모르게 그렇게 외치면서 손으로 붙잡고 있는 양초의 윗부분에 힘을 주어서 양초를 보지 속으로 더욱 더 깊이 밀어넣고 있었습니다. 아아아. 양초의 끝이 자궁경부를 더욱 더 세게 압박하는 것이 느껴졌습니다. 그 순간 마치 임신 말기에 양수가 터질 때처럼 자궁 속에서 뭔가가 터지는 것 같은 느낌이 밀려왔습니다. “아아아악! 이, 이상해! 뭐, 뭐야아아아! 안 돼에에엣!” 그 순간 보지에서 진짜로 봇물이 터지듯 세차게 씹물이 뿜어져 나왔습니다. 그 수압 (?) 이 너무 세서 보지 속에 박혀 있었던 양초가 - 비록 내가 한손으로 그 끝을 붙잡고 있었지만 - 보지에서 완전히 밖으로 뽑혀져 튕겨 나왔습니다. 그리고 밖으로 발사 (?) 된 양초의 뒤를 이어서 진짜로 참고 참았던 오줌을 싸는 것처럼 엄청난 양의 씹물이 뿜어져 나왔습니다. 난 난생 처음으로 스쿼팅 (Squirtin) 혹은 시오후키라고 불리는 것을 하고 있었습니다. ************************** 여성 사정 (女性 射精, 영어 : female ejaculation) 은 오르가즘 중 또는 오르가즘 전에 요도 하단에 있는 스케네샘에서 액체가 분출되는 현상이다. 흔히 분출 (squirting) 또는 분비 (gushing) 라고도 불리지만, 연구에 따르면 여성 사정과 분출은 서로 다른 현상이며, 분출은 방광에서 나온 소변을 포함한 액체가 갑자기 분출되는 것을 말한다. 여성 사정은 여성이 강한 성적 각성 상태나 오르가슴에 도달했을 때 요도를 통해 액체를 분출하는 현상을 총칭하는 용어이다. 이 현상은 분출되는 액체의 기원, 양, 성분에 따라 크게 두 가지 유형, 즉 소량의 유백색 액체를 분비하는 여성 사정 (female ejaculation) 과 다량의 묽은 액체를 분출하는 스쿼팅 (squirting) 으로 구분된다. *************************** 가끔 미용실에서 아줌마들이 모여서 야한 대화를 나눌 때 시오후키는 자주 언급되는 일 중 하나였습니다. 한 아줌마가 자기가 어제 남편과 섹스를 할 때 쌌다고 자랑을 하면 다른 아줌마가 절대로 그런 일은 없다, 그건 오줌이다, 넌 나이가 들어서 괄약근이 약해져서 그런 거다. 비뇨기과에나 가 봐라. 라고 타박을 하면서 싸움이 벌어지는 경우가 가끔 있었습니다. 그래서 난 아직까지 한 번도 이런 일이 가능한 거라고는 생각해 본 적이 없었습니다. 나도 그 아줌마처럼 섹스를 하는 중에 남자의 자지에 의해서 방광이 자극되어서 오줌을 싸는 현상일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방금 내가 싼 것은 절대로 오줌이 아니었습니다. 일단 오줌이 아닌 그 액체가 (그냥 씹물이라고 하겠습니다.) 뿜어져 나온 구멍이 평소에 오줌을 싸던 요도가 아닌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그 액체에서는 보통 소변에서 느껴지는 그 불쾌한 냄새가 전혀 느껴지지 않고 있었습니다. 어쨌든 난 마치 강한 전류에 감전된 사람처럼 온몸을 부들부들 떨면서 계속해서, 끊임없이 그 많은 양의 씹물을 뿜어내고 있었습니다. 체감상으로 거의 1분도 넘은 것 같은 시간이 흐른 후 - 아마 사실상으로는 30초 정도였을 거라고 추정됩니다 . - 뿜어져 나오던 물줄기가 마침내 멈추었습니다. 난 마치 마라톤을 전력질주한 사람처럼 헉헉대며 거칠게 숨을 내쉬면서 아직도 작게 경련을 일으키고 있었습니다. 그 때서야 흥분으로 뜨겁게 달아올라 있었던 머리가 서서히 맑아지면서 이성이 서서히 돌아오기 시작했습니다. 일단 마치 오줌을 싼 것처럼 큰 웅덩이가 생겨나서 완전히 엉망이 되어버린 마룻바닥은 둘째치고 방금 내가 너무 크게 비명을 질렀다는 사실이 떠올랐습니다. 난 그 소리에 딸아이가 잠에서 깨어나지는 않았을까 걱정 반 두려움 반으로 여전히 바닥에 누운 채로 머리만 살짝 돌려서 딸아이의 방쪽을 쳐다보았습니다. 기분 탓일까요? 딸아이의 방문은 어둠 속에 파묻혀 있어서 자세히 볼 수는 없었지만 조금 열려 있었다가 다시 휙 하고 닫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습니다. 난 이 부끄러운 모습을 딸아이에게 들키지 않았을까 하는 두려움과 걱정이 밀려왔지만 이제 손가락 하나 까닥할 수 없을 정도로 온몸에는 힘이 하나도 남아 있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실제로 몸을 억지로 일으켜서 딸아이의 방문을 열었을 때 제니가 잠을 자지 않고서 경멸어린 눈초리로 날 빤히 바라보고 있을까봐 너무 두려웠습니다. 그것도 그럴 것이 아빠의 장례식을 마치고 돌아온 바로 그날 밤에 아빠의 영정사진 앞에서 분수를 뿜어낼 정도로 자위를 하고 있는 엄마라니! 누가 들으면 진짜로 색정광 환자가 아닐까 하고 정신병원에 입원을 하라는 말을 듣고도 남을 정도니까요. ‘그럴 리가 없어. 만일 제니가 날 봤다면 밖으로 나와서 무슨 일인지 몸은 괜찮은지 물어봤을 거라고. 아니, 최소한 뭐라고 말을 했겠지.’ 난 그렇게 자신을 합리화시키면서 필사적으로 힘을 짜내서 바닥에서 몸을 일으켰습니다. 오줌을 싼 것처럼 흥건하게 고여 있는 씹물 웅덩이와 한쪽 구석에 떨어져 있는 양초와 내 속옷들을 보면서 저걸 치워야 한다는 생각을 했지만 도저히 기운이 남아 있지 않았습니다. 까딱 잘못하다가는 진짜로 여기서 쓰러지고 말 정도로 머리가 어지러워 오고 있었으니까요. 난 벽에 손을 기대서 몸을 지탱하면서 비틀거리는 발걸음으로 간신히 내 방으로 다시 들어갔습니다. 뭔가를 다시 입을 기운도 없어서 난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알몸으로 침대 위로 쓰러졌습니다. 그리고 마치 안식을 주듯이 죽음과도 같은 잠이 순식간에 날 찾아왔습니다. *********************** 난 알아야 했습니다. 요즘 애들은 우리 때와는 달라서 – 요즘은 인터넷, 구글, 각종 포르노 사이트 들이 있으니까요 . - 성적으로 매우 조숙하다는 것을 말입니다. 하지만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그건 나도 마찬가지인 것 같습니다. 저도 겨우 중 1때 고아원 언니 오빠들의 섹스를 훔쳐보고서 섹스가 뭔지 알게 되었으니까요. 당시 내 유일한 남자친구였던 남편에게 먼저 키스를 한 것도 – 그것도 입안으로 혀를 밀어 넣는 찐득찐득한 키스를 – 저였고 남편의 자지를 먼저 빨아준 것도 저였으니까요. 어쨌든 딸아이는 이미 섹스가 뭔지 내가 한밤중에 양초를 가지고 놀고 있는 게 뭘 의미하는지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걸 들키게 되면 내가 얼마나 민망해할까 봐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아무 말도 하지 않고서 방문을 조용히 닫은 것 같았습니다. 제 2장 “엄마, 일어나! 일어나서 죽 먹어!” 다음 날 딸인 제니가 어깨를 마구 흔들어대면서 날 깨우는 바람에 잠에서 깨어났습니다. “으.... 응.... 아... 알았어, 엄마 이제 일어났어.” 난 눈을 뜨지도 않고서 아직도 잠이 덜 깬 목소리로 그렇게 중얼거렸습니다. 그러자 제니는 자신의 임무를 다 했다고 생각했는지 내가 일어나는 것을 보지도 않은 채 방 밖으로 휙 나가버렸습니다. 난 간신히 눈을 뜨고서 정신을 차렸습니다. 그리고 내가 내 집의 침대 위에서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알몸으로 자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내가 왜 알몸으로 자고 있는 거야? 남편은? 벌써 출근했나?’ 그 때서야 진짜로 정신이 돌아왔습니다. 남편이 이제 내 옆에 없다는 것을..... 어제 간신히 장례식을 마치고 돌아와서 잠이 들었다는 것도.... 그리고 한밤중에 잠에서 깨어나서 밖으로 나가서는 남편의 영정사진을 보고서..... ‘헉! 설마 그건 꿈일 거야. 기영이 (남편) 가 그렇게 가고 장례를 치르느라 너무 정신이 없어서 그런 이상한 꿈을 꾼 걸 거라고. 하지만 그럼 왜 내가 알몸으로 자고 있었던 걸까?’ 난 그런 생각을 하면서 내 아랫도리를 내려다보았습니다. 내 사타구니 사이를 무성하게 뒤덮고 있던 보지털이 마치 떡진 머리처럼 잔뜩 뒤엉켜 있었고 군데군데 풀이 말라붙은 것처럼 새하얀 덩어리들이 달라붙어 있었습니다. ‘헉! 꿈.... 꿈이 아니었던 거야?’ 난 그 때서야 제니가 왜 그렇게 서둘러서 방에서 나갔는지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아무리 친한 친구처럼 격조 없이 지내는 세상에 둘도 없는 모녀 사이라고 해도 엄마의 이런 꼴을 본다면 어떤 딸이라도 좋아하지 않을 테니까요. 그 순간 지금 더 큰 걱정거리가 떠올랐습니다. ‘그게 꿈이 아니었다면 거실이 엉망이 되어 있을 텐데. 제니가 그걸 봤다면.....’ 어젯밤의 일이 꿈이 아니었다면 지금쯤 거실은 내 씹물과 던져 놓은 속옷으로 엉망이 되어 있을 게 틀림없었습니다. 만일 제니가 그걸 봤다면 무슨 생각을 할까 진짜로 걱정과 두려움이 밀려왔습니다. 난 속옷도 입지 않은 채 며칠 전, 남편의 사고 소식을 듣고서 경찰서로 달려가기 전에 방바닥에 던져 놓았던 반팔 티셔츠를 머리부터 입고서 밖으로 뛰쳐나갔습니다. 난 집에 있을 때 옷을 매우 편하게 입는 스타일입니다. 만일 제니가 딸이 아니라 아들이었다면 좀 더 조심했겠지만 딸이었고 남편은 내가 집에서 옷을 야하게 입으면 입을수록 좋아했으니까요. 아까도 말했듯이 우린 여전히 부부 금실이 매우 좋았거든요. 그래서 지금처럼 여름철이 되면 노브라에 팬티 하나만 입고서 그 위에 엉덩이 바로 아래까지 내려오는 티셔츠만 입고서 돌아다니는 적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지금도 아무 생각도 없이 그냥 T 셔츠를 입고서 밖으로 나가서는 거실 쪽을 쳐다보았습니다. 하지만 놀랍게도 거실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깔끔하게 치워져 있었습니다. 어젯밤에 분명히 내가 싸놓은 씹물 웅덩이가 말라붙은 자국도 보이지 않았고 한쪽 구석에 던져 놓았을 게 분명한 팬티와 브라도, 그리고 내가 자위를 할 때 사용했던 씹물이 잔뜩 달라붙어 있어야 할 양초까지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어제 남편의 제사를 지냈던 제사상까지도 말입니다. ‘어라! 진짜 꿈이었나? 그런데 제사상은?’ 내가 그렇게 의아한 생각을 한 순간 식탁에 앉아서 밥을 먹고 있었던 제니가 날 보고 크게 외쳤습니다. “엄마!” 난 깜짝 놀라며 거실에서 시선을 떼어내서 식탁 쪽을 바라보았습니다. 그러자 식탁 앞에 앉아 있는 제니 옆에서 오빠 (박 진철 관장님) 가 앉아서 커피를 마시고 있는 것이 보였습니다. (이제부터는 그냥 관장님을 오빠라고 부르겠습니다. 관장님과 친한 사이가 된 후 난 관장님을 친오빠처럼 생각하면서 항상 오빠라고 부르고 남편은 관장님을 그냥 형님이라고 불렀거든요.) 난 그 때서야 내 모습을 내려다보았습니다. 티셔츠 위로 육중한 E 컵의 젖가슴이 크게 출렁거리면서 그 윤곽을 선명하게 드러내고 있었습니다. 게다가 그건 흰색이었기 때문에 얇은 천 위로 젖꼭지의 모습도 보이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젖꼭지가 아니었습니다. 티셔츠는 길이가 긴 편이 아니라서 겨우 엉덩이까지만 간신히 가릴 정도였고 그 결과 보지털이 무성하게 나 있는 사타구니의 끝부분까지 밖으로 힐끗힐끗 보이고 있었던 것입니다. 난 깜짝 놀라서 한손으로는 내 사타구니를 그리고 한 손은 등 뒤로 해서 엉덩이를 가린 후 다시 내 방으로 뛰어 들어갔습니다. 밖에서 제니가 오빠에게 “관장님, 안 봤죠? 이해해 주세요. 엄마가 평소에도 좀 덜렁대는 성격인데 어제는.....” 하고서 결국에는 울먹이는 목소리로 말하자 오빠가 괜찮다며 달래주는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난 서둘러서 팬티와 브라를 입고 그 위로 무릎까지 내려오는 원피스를 입은 후 다시 밖으로 나갔습니다. 그리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오빠를 보고 언제 왔는지 물어봤습니다. 시간이 거의 12시가 다 되어가고 있었을 때였는데 오빠는 점심을 만들 여력이 없을 것 같아서 닭죽을 사 가지고 조금 전에 왔다고 말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거실도 대충 청소를 해 놓았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어젯밤에 바닥에 술을 좀 흘린 것 같더라. 물걸레로 닦았고 옷은 빨래 바구니 안에 넣어 놓았어. 상은 접어서 작은 방에 창고 방에 갔다 놓았어. 일어난 것 같으니까 닭죽 먹고 좀 쉬어. 나중에 전화할게. 제니는 나중에 심심하면 헬스클럽으로 놀러 와.” 오빠는 그렇게 말하고서 이만 간다고 하고서 밖으로 나갔습니다. 난 딸아이와 같이 닭죽을 먹으면서 “그런데 너 학교는” 라고 물어봤습니다. 그러자 이제 곧 방학이라서 선생님이 그냥 집에서 쉬라고 했다고 말해주었습니다. “방학식 날 와서 인사만 하고 가래.” 잠시 후 식사를 하고 나자 제니는 친구네 집에 가서 좀 놀다가 헬스장에 갈 거라고 말하고서 밖으로 나가 버렸습니다. 집에 혼자 남게 되자 난 욕조에 물을 받아서 뜨거운 물로 목욕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장례식 장에서 제대로 씻지도 못했기 때문에 오랜만에 뜨거운 물에 몸을 담그고 있으니까 기분 좋게 긴장이 풀리는 게 느껴졌습니다. 난 눈을 감고서 물속에 가만히 누워 있었는데 어느새 나도 모르게 한손으로는 내 젖가슴을 주물러대면서 나머지 한손은 가랑이 사이로 가지고 가서 클리토리스 위를 문지르고 있었습니다. 어느새 젖가슴을 주물러대고 있었던 오른손은 아래로 내려가서 검지와 중지 두 개를 보지 속으로 집어넣고서 빠르게 쑤셔대기 시작했습니다. 나머지 한손으로는 딱딱하게 발기되어 있는 음핵을 붙잡고서 아플 정도로 마구 꼬집어대면서 말이에요. 하지만 어젯밤과 마찬가지로 계속해서 2% 정도 뭔가가 부족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거의 절정에 도달할 정도로 흥분 수치는 계속해서 올라가고 있었지만 결정적인 뭔가가 찾아오지 않고 있었습니다. 마치 산정상이 보이지 않는 등산로를 계속해서 힘들게 걸어올라가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하지만 몸은 계속해서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으니까 도저히 멈출 수가 없었습니다. 난 눈을 뜨고서 주위를 두리번거리면서 자위도구로 삼을 만한 뭔가를 찾기 시작했습니다. 치솔? 아니 저건 너무 얇잖아? 린스통? 아니 저걸 집어넣으면 진짜로 보지가 찢어지고 말 거야. 그 순간 남편의 면도크림통이 들어왔습니다. 그건 길이가 16센티 정도에 원통의 지름이 5센티 정도 되는 통이었습니다. 난 두 번 생각할 것도 없이 그 크림통을 집어 들어서 내 보지 속으로 집어넣기 시작했습니다. 당연한 말이지만 남편의 작은 고추에 길들어져 있었던 내 보지에는 잘 들어가지 않고 있었습니다. 난 한손으로 내음순의 입술을 최대한 벌린 후 그 틈 사이로 크림통의 가장자리를 밀어 넣었습니다. 난 한쪽 가장자리를 모두 다 밀어넣은 후 통을 천천히 돌리면서 나머지 가장자리 부분도 내음순 속으로 밀어넣기 시작했습니다. 그건 어젯밤에 내가 사용했던 양초보다 두께가 더 굵은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하지만 난 중간에 포기할 수가 없었습니다. “아으윽!” 역시 진짜로 보지가 찢어지는 것 같은 고통이 밀려왔습니다. 하지만 어젯밤과 마찬가지로 그 고통이 크면 클수록 찌릿찌릿한 느낌도 훨씬 더 강하게 느껴지고 있었습니다. 어느 순간 “쑤욱~” 하는 느낌과 함께 크림통의 아랫부분이 5센티 정도 내 보지 속으로 미끄러져 들어왔습니다. 보지가 이렇게 찢어질 정도로 크게 늘어난 것은 난생 처음이었습니다. 하지만 한 번 아랫부분을 집어넣고 나자 나머지 부분은 생각보다 너무나 쉽게 내 보지 속으로 들어오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다 집어넣을 수는 없었기 때문에 – 혹시 잘못해서 나중에 다시 뽑아내지 못하게 될까봐 걱정이 됐기 때문에 – 난 3분의 2정도인 10센티 정도만 집어넣고서 거기서 멈추었습니다. 어젯밤과 마찬가지로 보지가 찢어질 정도로 크게 늘어나 있는 느낌은 진짜로 좋았습니다. 남자가 아니기 때문에 남자들이 느끼는 기분을 정확히 표현할 수는 없지만 남자들이 이해하기 쉽게 설명하자면 아마 이런 기분일 것입니다. 딱딱하게 발기되어 있는 자지를 거의 고통이 느껴질 정도로 세게 움켜잡았을 때의 느낌이랄까? 요도가 압박되는 찌릿찌릿한 고통과 뭔가 시원한 느낌이 동시에 느껴지는 기분? 그렇게 크림통을 절반 이상 내 보지 속으로 집어넣은 후 난 크게 늘어나 있는 질벽이 그 두께에 적응할 수 있도록 가만히 누워 있었습니다. 그 순간 딸아이가 사용하는 전동칫솔이 내 눈에 또 다시 들어왔습니다. (우리 집에는 나와 남편은 일반칫솔을 사용했고 딸아이만 전동칫솔을 사용하고 있었습니다. 전동칫솔이 비쌌기 때문이기도 했고 나와 남편은 그냥 칫솔이 훨씬 사용하기 편했거든요.) 난 미친 짓일 줄 알았지만 이미 성욕에 지배되어 버린 내 우동사리는 이제 전혀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었습니다. 난 제니의 전동칫솔의 스위치를 켠 후 그 고속 회전하는 칫솔모를 내 음핵으로 가져갔습니다. “힉! 아아아악!” 만일 거실에 누가 있었다면 틀림없이 내 비명소리를 들을 수 있었을 것입니다. 난 진짜로 강한 전류가 음핵을 세게 강타하면서 보지 전체로 퍼져나가는 것 같은 기분을 맛보았습니다. 그리고 크림통 때문에 거의 최대한도로 늘어나 있는 질벽이 엄청난 힘으로 수축하면서 그 크림통을 찌그러뜨리고 말겠다는 일념으로 세게 조이기 시작했습니다. 온몸을 부들부들 떨려 왔습니다. 그리고 또 다시 어젯밤에 느꼈던 것 같은 양수가 터지는 것 같은 기분이 자궁 속을 강하게 강타했습니다. 보지에서 또 다시 엄청난 기세로 시오후키가 터지면서 보지 속에 박혀 있던 양철통이 강한 힘으로 뿜어져 나왔습니다. 곧이어 오줌을 싸는 것 같은 세찬 물줄기도 뿜어져 나왔습니다. 만일 여기가 욕조 안이 아니라 어제처럼 거실이었다면 거실 바닥은 또 다시 오줌을 싼 것 같은 커다란 웅덩이가 생겨났을 것입니다. 난 어젯밤과 마찬가지로, 아니 어젯밤보다 더 많이 씹물을 뿜어내면서 생애 두 번째로 진짜 오르가슴을 경험하고 있었습니다. 약 5분 후에야 여진이 멈추는 것처럼 아직도 가볍게 떨리고 있던 몸의 경련이 멈추고 있었습니다. 욕조의 물은 이제 30도 정도로 미지근하게 식어 있었고 내 씹물이 잔뜩 섞여 있는 상태가 되어 있었습니다. 난 욕조의 마개를 뽑아낸 후 또 다시 흐늘흐늘하게 변해 있는 몸을 간신히 일으켜 세운 후 찬물로 샤워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날 밤에도 난 또 다시 자위를 한 후에야 – 이번에는 반찬을 하려고 사다 놓았던 오이를 사용했습니다 . - 깊이 잠이 들 수 있었습니다. 다음 날 눈을 떴을 때 난 놀랄 정도로 몸이 개운해진 것을 발견했습니다. 물론 남편의 부재로 인한 상실감이나 우울감은 그대로 느껴졌지만 처음 남편의 사고 소식을 들었을 때만큼 죽고 싶을 정도로 절망적인 기분은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몸도 훨씬 가벼워진 것 같았고요. 그래서 난 제니에게 아침을 차려준 후 거의 1주일 만에 미용실로 향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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