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탈:Eternal
2화
촛불든여우72026. 05. 18. 08:25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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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화 -
이른 새벽의 도로는 예상과 달랐다.
원래 이렇게 차가 많았는지? 6시가 겨우 넘은 시간인데 출근하려는 차들이 도로를 가득 메우고 있었다.
맞다. 가끔 새벽에 출근할 때도 항상 지금처럼 차가 많았다. 하지만 오늘은 너무 익숙했다. 답답해야 할 도로가 너무 익숙한 일상의 한 부분으로 다가왔다. 마치 매일 겪는 일처럼.
잠시 후 어제 지났던 위화감 가득했던 교차로가 눈앞에 다가왔다.
내 안의 다른 내가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간절히 소원을 빌고 있었다. 저곳을 지나면 모든 것이 꿈에서 깨어난 아침의 상쾌함처럼 원래의 기억대로 돌아오기를.
신호등이 바뀌었다. 살짝 밟은 액셀의 감촉이 낯설지 않았다. 하지만 어제와 같은 감각은 없었다. 그렇게 교차로를 지나고 회사에 도착했다. 사무실엔 너무 이른 아침이기에 아무도 출근하지 않았다.
평소와 조금 다른 아침이어야 했다. 출근하는 직원들을 주의 깊게 살필 수 있는 기회이기에. 이제 기다리면 된다. 나는 무엇을 보게 될까?
황 대리가 첫 번째 출근자였다. 나를 보자 냅다 소리를 질렀다. '좋은 아침입니다, 부장님!' 내 기억 속의 황 대리였다. 사무실을 휘어잡는 분위기 마왕 황 대리. 그의 인사가 나를 가라앉은 새벽 같은 내 가슴을 들뜨게 했다. 맞다. 나의 아침은 원래 이랬어야 했다.
다른 직원들이 하나둘씩 시간이 지나면서 사무실로 들어섰다. 어제와 다른 내 기억 속의 익숙한 직원들이었다.
난 안도하기 시작했다. 내 기억 속의 변함없는 일상이 다시 시작되고 있었다. '어제는 잠시 무언가 잘못된 꿈이었나 보다.' 숨을 내쉬는 순간 얼음공주 홍 과장이 사무실로 들어섰다.
평소의 아침처럼 긴장이 시작되었다. 그녀의 아침이 사무실의 하루를 좌우했기에 언제나 홍 과장의 출근은 묘하게 사무실을 긴장하게 만들었다.
'좋은 아침! 어젯밤은 계절에 맞지 않게 덥던데, 다들 컨디션은 괜찮은가요?' 피로를 잊게 해주는 맑고 밝은 목소리가 사무실을 가득 채웠다.
그녀는 어제보다 더 밝고 아름다운 얼굴로 부서의 직원들에게 인사하며 아침을 빛내고 있었다. 그녀로 인해 사무실이 달라지는 걸 누구도 느낄 만큼.
잦아들던 혼란이 가속되기 시작했다. 홍 과장은 왜? 다들 예전 그대로인데, 왜 그녀만?
그렇게 시작된 하루가 점심시간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사무실은 여전히 홍 과장의 분위기를 따라가는 듯했다. 하지만 그전과는 달랐다. 차갑고 이성적인 경직이 기본이었다면, 오늘은 부드럽고 따뜻한 여유가 흐르는 분위기였다.
그녀의 분위기가 사무실을 지배하고 있었다.
도대체 이건 뭐지? 변한 건 무엇이지? 내 안의 혼란이 걷잡을 수 없이 부풀어 오르기 시작했다.
그때였다. '부장님, 오늘 점심은 전에 말했던 딤섬집 어때요?' 맑고 기운을 돋우는 목소리가 내 귀를 건드렸다.
홍 과장! 언제부터 점심을 같이 먹었나? 그녀는 철저한 자기 절제의 화신이었다. 음식, 운동, 태도와 습관까지. 점심은 철저한 관리하에 직원들과 함께하는 것은 생각지도 않던 그녀였는데. 어색함에 나도 모르게 과장된 몸짓으로 손사래를 치고 말았다.
겸연쩍은 모습으로 나름 정중하게 거절했다. 그런 나의 내면은 알 수 없는 공포가 강하게 그녀를 멀리하라고 외치고 있었다. 왜? 그녀는 살랑거리는 봄바람과 같은데, 무엇 때문에 난 공포를 느끼는 거지?
나의 거절에 눈에 띄게 아쉬워하는 뒷모습을 보이며 어수룩하게 앉아 있던 노 주임을 일으켜 세워 같이 사무실을 벗어나는 홍 과장을 보며 나도 모르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안도했다고? 왜?
그렇게 지나간 점심시간은 뭘 먹었는지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단 먹은 것이 하나도 없는 것 같은 기이한 허기짐이 계속 나를 괴롭히고 있었다.
하지만 나른한 봄날의 오후는 이상하게 평온했다. 내 기억 속의 날들보다 더.
그래, 내 기억 속의 날들보다 더. 그때가 언제인가? 경험해 보지 않은 기억 속의 날이라니?
그렇게 지나가는 시간이 나를 흔들고 있었다.
하지만 풍경과 분위기만이 아니었다. 또 다른 변화가 내 기억을 휘젓기 시작했다.
갑자기 떠오른 의문 하나. '부장님'.
내가 언제부터 부장이었지? 지금 내가 부장이라고? 만년 차장이었던 내 모습이 머릿속에 떠오르는 지금 나는 부장이었다.
이제 확실히 느껴진다. 무언가 섞이고 있었다. 만년 차장과 존경받는 부장은 동일한 나였다. 하지만 두 개의 현실은 동시에 존재할 수 없다. 그럼 내 기억 속의 생생한 느낌은 무엇으로 설명해야 하는 거지?
잠시 후 정신을 차렸을 때 나는 여전히 한 부서의 부장이었고 부서원들이 걱정스러운 듯 한눈으로 나를 쳐다보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내 기억 속의 만년 차장은 누구지? 분명 현실이었고 경험이었는데.
다시 기억해 보려 해도 없는 것을 억지로 꺼내려는 때와 같은 당황스러움이 나를 감쌌다.
어느새 시간은 퇴근 시간이 되었다. 매일 반복되는 일과이지만 이 시간은 모두에게 묘한 긴장감을 불러온다. 오늘도 마찬가지이고. 하지만 나에게는 두려움이 먼저 올라왔다. 집으로 가는 길은 이전과 같을까? 다시 돌아가는 내 집은 아침과 같을까? 어제 아침과 같은 두 명의 아내가 존재하려나? 아니면 또 다른 무언가가 섞일 건가?
맞다. 뒤섞임이다. 나는 무언가의 섞임 사이에 묻혀 있는 거 아닐까? 그렇지 않고는 설명이 안 된다. 지금의 상황은 평소의 내 장난스러운 상상 속의 허상이 아니다. 상상은 내가 구분할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구분이 안 된다. 모두 다 현실과 같았다.
그리고 18시가 되었다. 다들 피시의 전원을 내리고 하나둘 자리를 뜨고 있었다. 혼란스러웠지만 어서 집으로 돌아가 아내를 보고 싶었다. 아내만은 나를 안정시킬 수 있을 것 같았다. 아내를 안으면 모든 혼란이 잦아들고 평온할 것 같았다. 그녀는 나에게 항상 보금자리였으니. 급한 마음에 자리를 정리하고 있었다. 그때 갑자기 홍 과장이 다가왔다. 퇴근 인사를 하려는 것 같았다. 하지만 가까이 온 그녀는 퇴근 인사를 하려는 표정이 아니었다. 묘한 미소를 얼굴에 띄고 있었다. 그리고는 조용하게 나의 귓가에 한마디를 했다.
'부장님! 내일은 뭐가 변할까요?'
멍하게 쳐다보는 나를 뒤로하고 사무실 문밖으로 나가는 그녀는 홍 과장이었다. 얼음공주도 아니고 화사한 꽃도 아닌 그 무엇도 아닌 '홍 과장'.
그렇게 그녀의 뒷모습이 사라질 때까지 내 자리에서 움직일 수 없었다. 머릿속에는 오직 한 가지, '뭐지?'
전화라도 걸어볼까? 아니었다. 어떤 확신도 없으면서 뭐라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주차장으로 내려가 차를 몰고 집으로 향했다. 문득 다시 그 교차로를 지나고 있음을 의식했다.
하지만 아무 변화도 없었고 위화감은커녕 무감각마저도 느껴지지 않았다.
귀갓길, 차들의 지독하고 지루한 정체의 행렬은 변함없이 반복되었다. 그 속에서 나는 기이하고 미칠 것 같았던 하루를 잊을 만큼 지쳐갔다.
그렇게 도착한 집 현관을 들어서며 아내를 안고 위안을 얻을 생각에 마음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아, 첫 데이트를 할 때처럼. 아내를 불렀다. 대답이 없다. 현관에 그녀의 작고 아름다운 발에 잘 어울리던 스틸레토 힐은 가지런히 자리 잡고 있었는데.
그러고 보니 집안이 묘하게 조용했다. 힘들어도 퇴근하고 거의 매일이라고 해도 좋을 만큼 나와 아들을 위해 음식을 하던 주방에서의 소리도, 습관처럼 켜져 있던 거실의 TV 소리도,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온 집이 어두웠다. 마치 커다란 냉장고와 같은 분위기를 느끼며 거실을 가로질러 안방으로 향했다. 문을 열고 들어선 방 안의 공기가 차가웠다. 그리고 불 꺼진 방에 놓여진 침대 위에 고개를 숙이고 앉아 있는 아내.
내 아내가 아닌 듯한 낯섦과 두려움. 뭐지?
불을 켜자 고개를 들어 나를 쳐다보는 아내. 두 눈엔 눈물이 가득하고 화장은 흐트러져 있었다.
말없이 일어나 나에게 다가온 아내는 내 가슴을 두 손으로 두드리며 한 글자만 반복했다. '왜? 왜?'
뭐가? 무엇을 말하는 거지? 아내의 행동은 무엇이지? 가슴을 두드리며 울다가 지쳤는지 내 발밑에 주저앉아 울기만 한다. 사무실에서도 그렇고 안식을 위해 기대를 안고 돌아온 집에서는 더 혼란스러운 일이 나를 맞이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때 머릿속에서 또 하나의 현실이 떠올랐다. 그때도 아내는 울었다. 나를 원망했다. 마지막에는 저주했다. 당신을 용서하지 않겠다고.
내 것이 아닌 듯한 나의 기억을 떨쳐내려 힘차게 머리를 흔들었다.
그 사이 아내는 힘이 다했는지 내 다리를 부여잡고 주저앉았다. 조용히 아내를 끌어안고 침대로 옮겼다. 침대에 앉아서도 내 무릎에 엎드려 울기만 한다. '왜? 왜?' 단 한마디만 반복하며.
일단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미 내 머릿속은 혼란으로 가득 찼고 아내에게 왜 우는지를 물어볼 여유도 없었다. 아내의 울음이 끝나기를 기다려 본다.
들썩이던 어깨가 서서히 잦아들고 있었다. 그리고 들리는 조용한 숨소리. 많이 지쳤는지 그대로 잠에게 발길을 돌렸나 보다. 살며시 머리를 빼서 베개를 괴어 주고 거실로 나왔다.
이제는 단순한 혼란이 아니다. 내가 미친 거 같다. 난 현실 속인가? 아니면 나만의 상상 속에서 꿈을 꾸고 있는 건가? 구분이 가지 않는다. 미친놈처럼 볼을 꼬집어 봤다. 우습게도 아팠다.
그때 현관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딸아이가 돌아오나 보다.
평소와 같은 밝은 포옹을 기대하며 인사를 했다.
아니 인사를 했다고 생각했다. 딸아이는 마치 없는 사람인 것처럼 나를 지나 방으로 들어갔다.
딸과 나는 다른 친구 부녀가 부러워할 만큼 대화가 많고 친구보다 더 가까운 사이였다고 생각했다. 어제까지는. 오늘부터는 아닌가 보다. 이제 혼란스럽지도 않다. 어디서부터 뭔가 틀어져 있는지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갑자기 어제 비디오 테이프가 떠올랐다. 다시 돌려본 테이프의 내용은 어제와 다른 것이 없었다.
막내 처제의 '형부 닮았다'를 마지막으로 테이프는 끝났다.
스마트폰의 졸업 사진을 다시 열어 보았다.
바뀌어 버린 전공도 그대로였다.
섞였다. 그것도 무작위로. 어디까지가 내 일상이었고 어디서부터 상상인가? 아니면 나도 모르게 바뀐 건가?
아니 내 일상은 있었나? 내가 바뀐 건가? 일상이 변한 건가?
갑자기 궁금해졌다. 딸아이는 왜 변했지?
딸의 방으로 향했다. 문을 두드렸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다시 문을 두드렸다. 얼마간의 시간이 흐른 뒤 문이 열렸다. 그 앞엔 차가운 바람을 동반한 딸아이가 서 있었다. 그리고 한마디. '오늘은 뭘 하고 싶어서?' 마치 징그럽고 역겨운 무언가를 경멸하듯이 쳐다보는 눈과 말투. 차마 뒤를 이을 말을 하지 못했다. 입을 열 수가 없었다.
그대로 문은 닫혔고 잠시 후 무언가 부서지는 소리가 집안을 울렸다.
하지만 난 문을 열고 들어갈 수 없었다. 왜? 왜, 나는 딸아이의 행동에 아무 반응을 할 수 없는 거지?
거실로 돌아와 소파에 앉았다. 정신을 가다듬었다.
오늘 저녁의 혼란은 퇴근 시간 홍 과장이 시작이었다. 그리고 아내, 이어서 딸.
지금은 홍 과장의 말이 이상함을 넘어 뭔가 다른 의미로 다가오고 있었다.
'부장님, 내일은 무엇이 변할까요?' 이 말이 시작이었을까?
오늘 하루가 변화로 시작했고 끝나가는 지금 변화보다 더한 지각변동이 내 주위를 잠식하고 있었다.
이대로 잠을 자고 내일이 밝아오면 무언가 달라져 있을까? 두려움보다 궁금증이 감정을 앞서기 시작했다.
그때 갑자기 머리를 스치고 지나가는 기억 하나!
'딸? 딸이라고?' 망치로 얻어맞은 느낌이 이런 거였나 보다.
나와 아내 사이엔 외동 아들뿐이었는데? 뭐지 지금 이 기억은?
그러면 여기 내 집에 자기 방에서 북풍을 두르고 있는 저 여자애는 누구지?
홀린 듯이 과거의 비디오 테이프를 다시 돌렸다.
막내 처제의 말 뒤로 흐려지는 한마디. '딸이 아빠를 닮으면 어쩌냐?'
아들이 아니었다고? 태어날 때부터 딸이었다고? 그렇게 밤이 깊어가고 있었다.
- 2화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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